《김형오 국회의장이 17일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현실적으로 여야 정치권이 개헌 방향에 합의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국회가 쟁점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마당에 개헌 논의가 과연 시기적으로 적절하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선진 - 분권 - 국민통합…金의장 3대 개헌방향 제시
권력구조 개편 갑론을박…지방선거前개헌여부도 이견…결과물 내기까지 첩첩산중
○ 그동안의 논의들
김 의장은 지난해 7월 18대 국회 개원사에서 헌법 개정의 필요성과 개정방향에 대한 사회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8월 말 김 의장은 의장 직속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자문위는 현재 최종보고서를 손질하고 있다.
이에 앞서 여야 의원들은 지난해 6월 미래한국헌법연구회(공동대표 이주영 이낙연 이상민 의원) 창립총회를 갖고 자문위원회와 별도로 헌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연구회 회원만 186명으로 개헌발의 정족수(재적의원의 과반수)를 넘겼고 개헌 정족수(전체 재적의원 3분의 2)에는 10명 남짓 부족하다. 물론 회원들이 동일한 헌법개정안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회는 그동안 30여 차례의 세미나와 8차례의 지역순회 토론회, 역대 의장 좌담회, 해외시찰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각계 의견을 들었다. 연구회는 이날 “의장의 제안을 매우 환영하며,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개헌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1987년 헌법을 시대 변화에 맞게 개정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이번 국회가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4월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고, 1990년과 1997년에는 정치권이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헤쳐 모이기도 했다.
○ 권력구조 개편 방향이 핵심
정치권에서는 여야의 소모적인 갈등과 충돌, 후진적인 정치 문화를 낳는 원인이 현행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차기 주자와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가 가장 크게 엇갈리는 대목이어서 역으로 개헌 논의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현재까지 거론되는 권력구조 개편의 대안은 △미국식 대통령제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독일식 내각제 등이다. 만약 정치권이 권력구조 개편을 합의한다면 ‘원 포인트 개헌’이라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영토조항 등 다른 조항의 개정은 논의조차 못하고 개헌 열기가 급격하게 식을 수 있다. 김 의장은 개헌의 3대 방향으로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선진헌법’ △권력분산을 실현하고 견제와 균형에 충실한 ‘분권헌법’ △국회가 중심이 돼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통합헌법’을 제시했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장훈 교수는 “과제는 엄중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다”면서 “개헌의 범위에 대한 합의, 보혁 내부의 합의,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합의 등 3가지가 이뤄져야 개헌 논의가 제대로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방선거 전 개헌 마무리 어려울 듯
김 의장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에는 차기 대선주자가 부각되면서 개헌 논의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지방선거 이전에 개헌을 마무리하자고 제안했다. 복잡한 개헌 절차상 개헌안이 제안된 때로부터 환산하더라도 공고, 국회 의결, 국민투표까지 대략 120일 정도가 걸린다. 결국 일정상 정기국회 때 특위를 구성할 경우 연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해야 할 만큼 일정이 촉박하다. 그러나 그때까지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국정 안정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을 제1과제로 삼고 있는 여권은 개헌을 공론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야당도 “개헌 문제가 정략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며 경계하는 눈치다.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강원택 교수는 “정치권에서 개헌 필요성에는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있어 앞으로 개헌 논의가 활성화될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개헌 방향에 합의하고 결과물을 낼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