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보를 위한 테러 방지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업무이고, 우리나라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 가입하려면 테러자금 차단을 위한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수사정보기관이 개인의 금융거래정보를 들여다보는 데는 엄격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 수사 정보기관이 편의에 따라 금융거래정보를 들춰보게 되면 금융비밀 보호라는 대원칙을 손상시켜 시장의 안정을 흔들고 국민의 사생활을 심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국정원은 정보수집권의 남용으로 특정인에 대한 뒷조사 의혹과 국민기본권 침해라는 부작용을 낳았던 원죄가 있다. 독재정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은 불법감청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대선 무렵에도 국정원 과장급이 다른 국가기관을 통해 이명박 후보의 부동산 보유 현황과 세금납부 명세 같은 개인정보를 수집해 물의를 빚었다. 국회 계류 중인 ‘국가 대(對)테러활동에 관한 기본법’ 제정안에서 테러위험 인물에 관한 금융거래정보의 수집 권한을 국정원에 부여할지를 놓고 정치권의 반대가 거센 것도 국정원의 ‘업보’라 할 수 있다.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 고유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일이 모두 사실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최근 논란의 빈도가 잦아진 것은 심상치 않다. 국정원의 ‘보안정보 수집활동’을 두고도 말이 많은 터에 영장 없는 금융거래정보 조회가 보안정보 수집에 그칠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국정원장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빈번하게 수사대상이 되고, 때로 구속이 된 것은 국정원의 업무가 정권에 따라, 원장에 따라 흔들렸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고유의 업무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금융거래정보가 있다면 법원의 영장을 받아 열람하면 된다. 국정원의 시급한 과제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 위상에 걸맞은 선진적인 정보수집 능력을 개발하고 정치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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