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만남.’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8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의 관계를 이같이 설명했다. 3일 펴낸 ‘5·16과 10·26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라는 제목의 박정희 정권 시절 회고록에서다.
그는 5·16 군사정변 이후 내·외신 기자를 통틀어 처음으로 박 전 대통령과 인터뷰를 했으며, 이를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 전 부장은 이 전 의장의 중학교 시절 은사였다.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부장의 고향 선배이자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전 의장과 김 전 부장을 청와대로 불러 여러 차례 식사를 했으며, 정국 현안에 대해 격의 없이 상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3선 개헌 이후 3자간의 대면은 거의 없었고, 박 전 대통령은 가장 믿었던 김 전 부장에게 시해됐다. 이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의 직접적인 동기는 박 전 대통령, 김 전 부장, 차지철 전 대통령경호실장 3자간의 미묘한 갈등 관계”라고 단언했다.
박정희 정권 말기 김 전 부장은 비교적 합리적이었지만 차 전 실장은 강경일변도였다. 이 전 의장은 김 전 부장이 1979년 9월 말 중정부장 공관으로 당시 신민당 김영삼 총재를 비밀리에 불러 의원 제명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시도한 사실을 공개했다. 부마항쟁 때도 김 전 부장은 현장에 내려간 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반면 차 전 실장은 “탱크로 데모꾼을 확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설 정보조직을 갖고 있던 차 전 실장은 내부 절차를 거치는 김 전 부장보다 항상 시간적으로 앞설 수밖에 없어 대통령의 신임을 더 받았다는 게 이 전 의장의 시각이다. “차 전 실장은 국회 내에서 비밀리에 자기 조직을 갖고 있었으며, (비밀조직은) 발언 등으로 행동하는 의원과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쓰는 의원을 합해 2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행정부 장관뿐 아니라 당 간부들도 그에게 꼼짝 못하는 형편이었다.”
이 전 의장은 “김 전 부장이 ‘차 전 실장을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결과적으로 10·26사태라는 비극이 일어났다”고 술회했다. 그해 가을 김 전 부장은 청와대 옆 안가에서 이 전 의장을 만나 “차지철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 그가 모든 일을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 여간 큰일이 아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10·26 일주일 전 김 전 부장과의 만남이 아깝게 무산됐던 일을 거론한 이 전 의장은 “대통령 시해를 막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생각한다”며 “어느 정권이나 강경파가 득세하면 그 정권과 정당은 반드시 망하고 만다”고 적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