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서민’도 좋지만 문제는 ‘빈 곳간’

  • 입력 2009년 8월 5일 02시 56분


내년 세수 11조 줄어드는데 복지정책 잇달아 발표

“이제 대학 등록금 걱정을 안 하셔도 된다. 중산층 이하에게는 (학자금을) 좀 빌려주는 제도를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한다.”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밝힌 ‘대학 등록금 취업 후 상환 대출제도’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내년에 6000억 원이 필요하다며 기획재정부에 관련 예산을 추가 요구할 방침이다. 하지만 재정부는 최대 3000억 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더 배정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재정부는 대통령의 ‘주문’을 거스르는 것처럼 비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년 예산을 짜고 있는 재정부 예산실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하면서 재정적자가 올 한 해에만 51조 원에 이르고 내년에도 11조3000억 원의 세금이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부터는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4대강 살리기를 포함한 녹색성장 예산이 7조 원가량 증액될 예정이고 13조 원 규모의 법인세와 소득세 추가 감세(減稅)까지 예고돼 있다. 나갈 돈은 많은데 들어올 돈은 줄어들 것이 명확한 상황.

정부 형편이 이런데도 각 부처는 대통령 공약사항이니 핵심정책 사업이니 하며 예산요구액을 늘리고 있다. 각 부처가 손을 벌린 내년 예산요구액은 298조5000억 원으로 올해 본예산(284조5000억 원)보다 4.9% 늘어난 것은 물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용’인 추경예산(301조8000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재정부는 불요불급한 사업을 대폭 줄인다는 방침이지만 최근에는 ‘서민 친화적인 행보’를 재촉하는 대통령까지 나서 예산요구액에 포함되지 않은 복지성 예산사업을 잇달아 발표하는 탓에 난감해하고 있다. 교과부만 해도 대학 등록금 대출제도의 변화로 내년 6000억 원을 시작으로 향후 5년간 연평균 1조5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이 대통령이 충북 괴산고를 찾아 언급한 ‘기숙형 고교 기숙사비 경감대책’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원을 분담한다는 원칙만 정해졌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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