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하고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폭격까지 검토하는 등 1차 북핵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던 시점에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카터 전 대통령과 만나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며 핵시설 동결과 IAEA 사찰관 잔류 등에 동의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또 미국의 지원으로 경수로 건설이 이뤄지면 기존 원자로를 해체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의사를 즉시 백악관에 전달해 미국의 강경한 대북 기류를 대화 쪽으로 선회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결과 북-미는 그해 10월 제네바합의를 통해 1차 북핵 위기를 봉합할 수 있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방북 후 서울에 들러 김 주석의 남북 정상회담 의사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정상회담은 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