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방북’… 도착 1시간전 언론 노출

  • 입력 2009년 8월 5일 02시 56분


■ 클린턴 평양방문 안팎

경유지 안거치고 미국→북한 직행

김정일 만찬에 북한 실세들 총출동

北방송 방북 보도중 5, 6분 먹통 사고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및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은 마치 ‘007 작전’처럼 은밀하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한국이나 중국 등 중간 경유지를 거치지 않고 미국에서 캄차카 항로를 이용해 곧장 평양 순안공항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북 소식도 평양 도착 1시간여 전에야 언론에 알려졌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도 전광석화처럼 방북 후 수 시간 만에 이뤄졌다.

○…김 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날지는 이번 방북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북한 언론들은 오후 10시부터 이들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을 접견하시었습니다”로 시작되는 방송을 통해 접견과 만찬 등을 대내외에 상세하게 전했다. 대내용 TV 방송인 조선중앙TV는 오후 10시 40분경 김 위원장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나란히 앉고 미국 측 수행원들이 뒤에 선 ‘1호 사진’을 내보냈다.

○…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국방위원회가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개최한 만찬에는 북한 실세 권력자가 총출동했다.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기남 당 중앙위 비서, 강석주 내각 외무성 제1부상, 김양건 당 중앙위 통일전선부장, 우동측 국방위원,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북핵 실무를 담당하는 외무성 강 제1부상과 김 부상 등이 모습을 나타낸 것은 북한이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북핵 문제 해결과 연계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외교소식통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에 직면한 북한이 그만큼 급했다는 뜻”이라며 “북한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50분경 평양 순안공항에서 트랩을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악수를 했다. 그는 북한 측 여성 통역원의 말을 들으면서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으며 양 부위원장과 짧게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북측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았다. 그는 미군 군용기를 이용했으며 미국 측에서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한 여성 통역사가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시종 굳은 표정이어서 마중 나온 북한 측 인물들의 미소 띤 표정과 대조를 이뤘다. 그의 표정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 도중에도 계속 굳어 있었다.

○…북한의 대외용 라디오방송인 평양방송은 클린턴 전 대통령 일행의 평양 도착 소식을 정오 뉴스에 보도하면서 이례적으로 ‘방송사고’를 냈다. 아나운서는 정오 시보가 나가고 8초가 흐른 뒤 “미국 전 대…”라고 하다 말을 멈췄다. 침묵이 10여 초가 흐른 뒤 5, 6분 동안 경음악이 흘러나왔고 아나운서는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 일행이 4일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대내용 라디오 방송인 조선중앙방송도 정오 뉴스에서 평소와는 달리 시보 뒤 곧바로 뉴스를 보도하지 않고 경음악을 내보내다가 평양방송과 같은 시점인 낮 12시 6∼7분에 보도를 시작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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