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DJ 찾아가 50년 애증 풀다

  • 입력 2009년 8월 11일 03시 03분


김영삼 전 대통령(가운데)이 10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 쾌유를 기원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 왼쪽은 이철 세브란스병원장. 홍진환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가운데)이 10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 쾌유를 기원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 왼쪽은 이철 세브란스병원장. 홍진환 기자
전격 병문안… DJ 병세 위중해 만나지는 못해

“우린 동지이자 경쟁자… 화해했다고 봐도 된다”

李여사 “다녀가신 일 알리면 굉장한 위로 될것”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10일 병세가 위중한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극적으로 화해했다. 50년 가까이 이어진 정치적 구원(舊怨)의 매듭을 푼 것이다.

YS는 이날 오전 10시경 김기수 비서실장과 함께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해 DJ를 병문안했다. YS는 DJ의 병세가 위중해 9층 중환자실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20층 VIP 병실에서 15분간 머물며 DJ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 등과 이야기를 나눴다.

YS는 병원을 떠나면서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제 그럴 때가 되지 않았느냐. 그렇게 봐도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6대 국회 때부터 동지적 관계이자, 경쟁 관계로 애증이 교차한다”며 “이희호 여사에게 ‘세상에 기적이라는 게 있으니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으시도록 하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DJ의 최측근인 권노갑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두 분이) 그 전에도 화해는 했지만 이번 (병문안을) 계기로 두 분의 관계가 완전히 해소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YS는 이날 이 여사 등을 위로하며 “나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젊을 때부터 동지 관계였다. 오랜 기간 협력도 했고 경쟁도 했다. 둘이 합쳐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고 말했다고 김 비서실장이 전했다. 이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는 아마 미얀마처럼 됐을 것이다. 그때는 목숨 걸고 싸웠다. 우리 둘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였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이에 이 여사는 “직접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 대통령이 오늘 조금 좋아졌고 깨어나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면 굉장한 위로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YS가 병원을 떠날 때 박지원 의원 등 동교동계 측근들이 모두 배웅에 나섰다. 평소 DJ를 거론할 때 존칭을 쓰지 않던 YS는 이날만큼은 꼬박 ‘김대중 대통령’으로 불렀다.

YS와 DJ는 한국 야당사를 대표하는 두 축이었다. 1960년대 야권에서 YS는 민주당 구파, DJ는 민주당 신파를 각각 대표하는 소장파였다. ‘40대 기수론’을 내건 두 사람은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충돌했으나 1차전은 DJ의 승리로 끝났다. 두 사람은 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에 손을 잡고 1985년 신민당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1987년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다시 등을 돌렸다. 이후 YS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먼저 당선됐고, DJ는 1997년 집권에 성공했다.

DJ 정부 초기 YS가 주변 인사들에 대한 사정 바람이 거세지자 DJ를 향해 “독재자”라고 비난했고 두 사람의 갈등은 전면전으로 비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DJ가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비난하자 YS는 “그 입을 닫으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YS는 이날 방문에 앞서 DJ에 대한 과거의 감정을 상당 부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수 비서실장은 “일요일에 예배를 보시고 느끼신 게 있는 것 같다. 오전에 운동을 다녀오신 뒤 ‘병원에 다녀와야겠다’고 하시더라”며 “마음의 정리가 되신 상태에서 가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측근은 “DJ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YS가 만감이 교차하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민추협 회장인 상도동계 출신의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10일 “YS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화해를 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며 “두 분의 화해 정신을 따르는 의미에서 11일 오후 민추협 임원단 30여 명이 DJ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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