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합의서’ 5가지 허점… ‘제2의 유씨’ 나오면 또 속수무책

  • 입력 2009년 8월 15일 02시 56분


신변안전 보장 제도화 필요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가 13일 풀려났지만 북한 지역 내 한국인의 신변안전 문제는 나아진 것이 없다. 따라서 금강산, 개성 관광 재개나 민간인 방북 확대에 앞서 2004년 남북이 체결한 ‘개성공업지구의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의 허점을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이에 관한 남북 회담이 재개될 경우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①한국인 혐의 내용, 북한이 입 다물면 알 길이 없다

합의서에 따르면 남측은 이번 유 씨 사건에서처럼 북측이 통보하는 내용 외에 정확한 진상을 스스로 파악할 방법이 없다. 또 북측이 피조사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구체적인 권리를 명시하지 않았다. 우선 ‘기본적 권리’에 변호인의 접견권, 면접권 등을 명시해 최소한 위반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측이 함께 진상조사를 할 수 있는 근거 마련도 절실하다. 합의서는 출입, 체류와 관련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위원회 구성을 규정했으나 실행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올 4월부터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 당국 간 접촉에서 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②北은 한국인을 무한정 억류 가능?

합의서는 북측이 한국인을 구금해 조사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하지 않았다. 유 씨는 136일이나 조사를 받았다. 북측이 한국인을 무한정 억류해도 인권 침해라는 원칙적인 비난 외에 제재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합의서에 위반 행위에 따른 조사와 구금의 시간적 한계, 신병 인도 절차가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③‘엄중한 위반 행위’가 무엇인지는 북한 마음

합의서에 따르면 북측은 규정을 위반한 한국인에 대해 경고 또는 범칙금 부과, 추방 등의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이외에 ‘남과 북이 합의하는 엄중한 위반행위’에 는 “쌍방이 별도로 합의해 처리한다”고 했다. 북한은 엄중한 위반행위가 무엇인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이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좋지만 세세한 혐의를 모두 열거하기 힘든 한계도 있어 정부는 고민이다.

④관광지구 벗어나면 총 쏴도 그만?

북측은 지난해 박왕자 씨가 금강산 관광지구가 아닌 군 경계지역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사살했다. 합의서 11조는 “(관광)지구 밖의 북측 지역을 출입할 경우 북측에 별도로 정한 절차에 따른다”고 돼 있지만 ‘별도의 절차’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다. 한국인 신변안전 보장 약속을 북한 전 영토로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⑤평양의 한국인은 신변안전 보장의 사각지대?

정부는 2005년까지는 관광지구 이외에 평양 등을 방문하는 한국인의 경우 북측이 발행한 ‘신변안전 및 무사귀환 보장’ 서류를 첨부해야만 방북 신청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가 좋아졌다며 이 규정을 삭제했다. 지금도 이 지역을 방북하는 한국인은 북한의 선처에 자신의 안전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관련 규정 신설이 시급하다고 대북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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