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玄회장의 보따리로는… 선물 더 달라” 버티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15일 02시 56분



■ 金-玄 어제도 못만나
玄회장, 김양건 부장과 만나… 관광안전 보장 등 요구한 듯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 5일째인 14일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이 15일에도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귀국할 경우 억류 근로자 유성진 씨(44)의 석방에는 성공했지만 금강산 및 개성 관광 등 대북사업 재개와 당국을 대신한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당초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당초부터 현 회장을 만날 계획이 없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 현정은 김정일 회동 왜 무산됐을까
현 회장은 당초 13일 오후 김 위원장을 만났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론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만찬을 함께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이 회동은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의 만남을 전제로 했던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한 당국자는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나려는 남한 인사들은 우선 통전부장을 만나 사전 조율을 거치는 것이 통상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2005년 6월 방북 당시 김 위원장을 접견하기 전 임동옥 통전부 제1부부장을 만나 사전 조율을 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김 부장은 현 회장이 이번 방북에서 만난 최고위 당국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현 회장을 직접 만나는 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이번 현 회장의 방북 목적을 유 씨 석방으로 제한했고 따라서 현 회장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보낸 남북관계 관련 메시지나 대북 지원 제의 등 북한이 바라는 ‘선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3일 현 회장을 만난 김 부장이 이런 내용을 파악하고 김 위원장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03년 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했던 임동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경우 김용순 통전부장 등과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대통령의 친서까지 전달했지만 사전 조율에 실패해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적이 있다.
한편 김 위원장은 현 회장을 만날 계획이 애초부터 없었을 수도 있다. 북한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촉구에 따라 북-미 관계 개선 차원에서 유 씨 석방을 결정했을 개연성이 있다. 또 유 씨를 더 이상 억류하고 있는 것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현 회장을 부른 것은 형식적인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수순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자들은 김 위원장을 만나려는 남측 인사들에게 “일단 올라와보라”는 식으로 방북 제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에도 이종혁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4일 현 회장의 방북을 수락하면서 김 위원장 접견에 대한 약속은 하지 않았고 현 회장은 과거 세 차례의 접견 경험을 상상하면서 방북했을 가능성이 크다.
○ 김 부장에게 어떤 메시지 전했을까
현 회장은 김 부장에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 아닌 자신의 의사를 전했고 김 부장은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 회장은 우선 금강산 및 개성 관광 재개를 호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이 지난해 7월, 개성 관광이 지난해 12월 각각 중단된 이후 현대아산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대북 관광사업이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 되는 현대아산의 사업 구조에서 관광사업 중단은 치명적이다. 이 여파로 현대아산은 올해 1분기(1∼3월) 257억여 원의 당기 순손실을 봤다.
현대아산은 대북 관광이 재개되면 할인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하고 10% 정도의 예약금을 미리 받는 ‘금강산 예약판매’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확보한 금액은 10억여 원에 불과하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예약 고객이 3만4000여 명으로 관광 재개 이후 1개월 정도는 관광객 모집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점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 회장이 백두산 관광사업 문제를 타진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대아산은 2007년 10월 북측과 백두산과 개성 관광에 합의한 뒤 그해 12월 개성 관광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백두산 인근 북한 삼지연 공항의 공사 진척이 지지부진한 데다 관광 일정, 항공 협정 등의 세부 항목에 대한 합의가 미뤄지면서 백두산 관광 논의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개성공단 관련 협의도 관심이 모아지지만 현 회장 개인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점이 문제다. 북측이 요구한 개성공단 토지 임대료와 근로자 임금 인상 등은 남북 당국이 논의 중인 사항이어서 현대아산이 직접 협상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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