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 구상’이다. 북한이 핵 포기를 결심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대규모 경제 지원을 하고 남북 간 재래식무기 감축 방안도 논의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구체적인 대북 지원 의사가 없는 일방적인 ‘핵 포기 압박’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 한반도 新평화 구상
이 대통령이 제시한 대북 경제지원 방안은 한국과 미국이 주축이 되어 북핵 6자회담 참가국들과 논의하고 있는 ‘포괄적 패키지’, 나아가 2007년 대선 공약으로 출발한 ‘비핵·개방 3000 구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태국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미국이 구상 중인 포괄적 패키지의 방향으로 북-미관계 정상화, 경제·에너지 지원, 평화체제 구축 등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한국형 포괄적 패키지’는 국제금융기구 등을 활용하는 국제협력 방향까지 제시함으로써 북한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비용 조달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이 재래식무기와 병력 감축 논의를 제의한 것은 그동안 군사력 감축보다는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정부의 대북 군사협상 기조에 상당한 변화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번 제안에는 무엇보다 남북이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줄여 경제발전을 이루자는 실용주의적 목적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북한이 휴전선에 집중 배치한 장사정포 등 재래식전력을 축소하거나 후퇴시켜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 북한의 기습공격 능력을 제거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남북 간 재래식 군축협상은 △군사분계선(MDL) 주변의 남북 간 일정구역을 ‘전력배치 제한지역’으로 설정하는 방안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줄이는 대신 북한의 전방배치 전력을 감축하는 방안 △남북한 동시 감군(減軍)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의 대남 기습능력을 제거하려면 전차 800여 대 등 전방에 배치된 북한군 8개 사단을 해체하거나 감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상응해 남한도 휴전선 일대의 전차와 항공기, 병력을 해체하거나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영어 표현대로 총검을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며 비무장지대(DMZ)를 평화구역으로 활용하는 방안, DMZ를 가로지르는 ‘남북경협 평화공단’ 설치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적극적 대화 제의에 난제 산적
이 대통령은 이 같은 의제들을 포함해 “언제 어떤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를 대화하고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의 선결조건이 북핵 폐기냐는 물음에 “북핵 폐기가 가시화된 단계라고 꼭 전제를 달긴 어렵다. 정상회담이라는 게 일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일을 결단해서 만들어 내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기간이나 속도를 단축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일이 된다면 회담도 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 우선론’부터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대신 ‘비핵화 결심’으로 건의 수위를 낮췄지만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전제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의 이행에 대한 언급이 없고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44) 석방 이후에도 구체적인 대북지원 방안이 없다는 점도 불만일 것으로 보인다.
재래식군축 협상도 쉽지 않은 과제다. 남북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서로 다양한 군축 제안을 했지만 실질적 협상 등 가시적 성과가 없었다. 군 관계자는 “일단 재래식 군축 협상이 이뤄진다 해도 북한이 주한미군 전면 철수 등 수용하기 힘든 요구를 할 경우 진전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