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개성관광 재개에 백두산 신규사업 ‘보너스’ 기대
北 과잉요구로 난관 부딪힌 개성공단 문제도 논의 가능성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6일 오찬을 함께 했다는 소식이 이날 밤 전해지면서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이 주도하는 남북 경제협력이 재개될 가능성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현 회장의 ‘1순위’ 방북 목적인 현대아산 근로자 유성진 씨의 석방 문제가 이미 해결된 만큼, 두 사람의 만남에서 주제는 자연스럽게 현대그룹의 대북사업과 전반적인 남북협력이 되었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 금강산, 개성 관광 재개 요청 가능성
현대그룹은 이날 오후까지 현 회장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통일부에 현 회장의 북한 체류 연장 신청을 했다. 체류 연장이 승인된 뒤 정부 당국자는 “우리 국민이자 현대아산 근로자인 유 씨가 석방된 이후 현 회장의 방북 일정은 순전히 남북 경협 사업자로서 자체적인 필요에 따른 것”이라며 현 회장과 정부 사이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정부의 설명처럼 현 회장이 ‘사업자’ 자격으로 김 위원장을 만났다면 현 회장은 유 씨 석방에 대한 감사의 뜻을 김 위원장에게 전한 이후에는 주로 현대아산의 당면 사업을 대화 주제로 꺼냈을 것으로 보인다.
유 씨 석방 이후 현대아산의 최우선 과제는 대북 관광사업의 재개다.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이어 12월 개성 관광까지 중단된 상황에서 현대아산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현대아산의 주력 사업인 금강산, 개성 관광이 중단된 이후 현대아산은 올해 1분기(1∼3월) 257억여 원의 당기 순손실을 입었다. 현대아산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 ‘평화생태(PLZ·Peace & Life Zone) 관광’ 등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회사를 흑자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 백두산 관광 등 ‘보너스’도 얻을까
현재 논의가 중단된 백두산 관광사업에 대한 논의 여부도 관심사다. 현대아산은 2007년 10월 북측과 백두산 및 개성 관광에 합의한 뒤 그해 12월 개성 관광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백두산 인근인 북한 삼지연 공항의 공사 진척이 더뎌지고 관광 일정과 항공 협정에 대한 협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백두산 관광사업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이어왔다. 백두산 관광은 현대아산이 키울 수 있는 새 사업 영역이라는 점에서 현 회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김 위원장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북측이 토지임대료와 임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면서 어려움에 빠져 있는 개성공단 문제의 해결도 현 회장이 제기할 수 있는 건의사항 가운데 하나다. 건설사업부문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아산은 개성공단이 정상화되면 이후 개성공단 확장 또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시설 건설 등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에 대한 북측의 반응은 즉각 전해지지 않았으나 조선중앙통신 등이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을 만나 “현대그룹의 선임자들에 대하여 감회 깊이 추억하면서 동포애의 정 넘치는 따뜻한 담화를 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미루어 현 회장이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
○ 다섯 차례 체류 연기 이유도 관심
당초 2박 3일 일정으로 10일 평양으로 떠난 현 회장의 일정은 다섯 차례 연장 끝에 7박 8일로 늘어났다. 지금까지 7차례 평양을 방문한 현 회장은 이번이 가장 오랜 체류다.
현 회장의 평양 체류가 길어진 데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왔다. 단순히 김 위원장의 일정 때문이라는 분석, 현 회장과 남측 정부를 초조하게 하기 위해 북측이 일부러 시간을 끌었을 것이라는 분석, 또는 현 회장이 들고 간 ‘메시지’나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면담 결정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분석 등 다양한 추측이 현대그룹과 정부 안팎에서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북한 주간지 통일신보가 1998년 10월 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이 그의 숙소를 한밤중에 전격 방문해 면담이 이뤄진 이야기를 소재로 장문의 시를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15일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따르면 통일신보는 14일자에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시에서 김 위원장이 지방의 한 공장을 방문하러 가다 정 명예회장이 평양 방문을 마치고 이튿날 떠날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는 차를 평양으로 돌리게 했다고 묘사했다. 이를 놓고 일부에서는 현 회장과의 깜짝 만남을 암시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