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대통령의 전화 스킨십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민주당 소속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4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공화당 출신의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이후 오바마는 다른 상원의원들과 함께 백악관 오찬모임에 초대됐다. 오바마는 저서 ‘담대한 희망’에서 ‘두 차례 접촉을 통해 부시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오바마 역시 여야 의원들과 폭넓은 ‘전화 스킨십’을 유지하고 있다.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 이후 경기부양을 위한 8000억 달러의 공적자금 투입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틈만 나면 공화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법안 설명과 함께 협조를 요청했다.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다수당의 힘으로 압박하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전화해 정부 정책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 덕분인지 클린턴 정부에서 주요 법안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 비율이 여당인 민주당보다 높게 나타난 일이 자주 있었다. 작고한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각계각층에 전화를 거는 이른바 ‘오부치 폰’으로 한때 지지율을 2배나 끌어올린 적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부터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예고 없이 전화를 걸고 있다.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자신을 도운 의원들은 물론이고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에게도 전화해 안부를 묻거나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이 대통령의 전화 스킨십은 민심과의 소통 강화 차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 전화의 대상을 야당 의원에게까지 넓히는 것도 한번 고려해봄 직하다.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제안한 선거제도 및 행정구역 개편 같은 정치개혁 방안만 해도 국민 공감대와 정치권 합의가 이뤄질 때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어제 “전부터 민주당은 지역주의 해소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으며 중·대선거구제를 비롯한 여러 방안을 이미 내놓은 터”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정 대표는 국회를 통과한 미디어법을 여전히 문제 삼으며 이 대통령 제안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대통령의 전화 스킨십이 아닐까 싶다. 서로 통화를 하다보면 “허심탄회하게 직접 만나 대화 좀 해보자”는 소리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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