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경영분석 없이 합의… 모럴해저드 부를 것”
한나라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최근 공공기관 정년을 공무원 수준(60세)으로 2년 더 연장하는 등 노사관계 4개항에 합의한 데 대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정년 연장에 대한 합리적 근거도 없는 데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선진화 방침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 인건비 8% 이상 올랐는데….
한국노총은 이번 합의가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책 중 하나로 노무현 정부 때 이미 합의됐던 일”이라며 “모든 공공기관에 다 적용하자는 의미는 아니고 노사 자율에 맡기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황에서 왜 2년 연장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분석조차 없이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1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 인건비 총액은 15조512억 원으로 2007년 13조8328억 원보다 8.8% 증가했다. 정부가 제시한 인상률 가이드라인은 3%다. 인건비 증가율은 기타 공공기관이 9.8%로 가장 높았다. 이어 공기업(9.1%), 준정부기관(6.7%) 순이었다.
공기업 선진화 주무부처인 재정부는 당혹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공공기관의 정년이 2년 더 연장되면 2012년까지 평균 12.7%(2만2000여 명·129개 공공기관 기준) 인력을 감축하려는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침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재정부 관계자는 “대량 해고 등 인위적 인력 감축이 어렵기 때문에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감소로 감축해야 하는데 연장이 되면 인력감축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며 “매년 1조 원 이상 증가하는 공공기관 인건비 부담도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 경영분석이 먼저 이뤄져야
이종훈 명지대 교수(경영학)는 “여당이 공공기관의 구체적인 경영 및 직무, 정원 분석 없이 획일적으로 정년 연장에 합의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해당 기관의 경영상태가 우수하고, 전문성 등을 고려할 때 정년 연장이 경영상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면 정년을 연장할 수 있다”며 “하지만 공공기관의 경영상태가 천차만별이고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상황에서 구체적 분석 없이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모두 4조8000여억 원의 추경 예산이 통과된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는 정관에 부채상환 조항조차 없었다. 두 기관은 누적 부채(2007년 기준)가 각각 21조6118억 원, 8조7436억 원에 이르지만 매년 수천억 원씩 남긴 당기순이익은 사업 확장 및 상여금, 사내 복지기금으로 사용됐다. 부채는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정년 연장으로 인한 비용 및 효과, 기관의 미래 수익, 정원의 적정 규모, 향후 사업계획 등을 기관별로 면밀히 따지지도 않고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합의문에 서명한 것은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여당이 정부 방침을 도와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라며 “최소한 정년 연장에 대한 비용계산이라도 하고 합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