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어려움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6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각계 인사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왼쪽)은 “우리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지셨다”고 애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가운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 세계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오른쪽)는 조문 후 이희호 여사를 10여 분간 위로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각계 인사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왼쪽)은 “우리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지셨다”고 애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가운데)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 세계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오른쪽)는 조문 후 이희호 여사를 10여 분간 위로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하루종일 긴박했던 의료진-가족 표정

어제 오후 심장정지<1시 35분> → 일시회복<1시 40분> → 끝내 서거<1시 43분>
서거 2시간전까지 가족과 눈빛으로 의사소통
의료진 “다발성 장기부전… 심폐소생술 안해”

《‘인동초’라는 별명답게 숱한 난관을 헤쳐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병상에서도 삶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가족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 이희호 여사, “다시 일어나요”

18일 오후 1시 43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본관 9층 중환자실에는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김홍일, 홍업, 홍걸 3형제와 손자 손녀 등 가족이 임종했다. 서거 순간 VIP 병동 가족 대기실과 9층 중환자실을 오가며 김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던 가족들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불과 2시간 전까지 눈빛으로나마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아 일반적인 대화는 불가능했지만 눈빛으로 가족들과 교감해왔다. 서거 2시간 전에도 눈빛으로 가족들과 간단한 의사소통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서거 1시간 전부터 의식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의식을 찾지 못하는 김 전 대통령 곁에서 계속 말을 걸었다. 아들 3형제는 아버지에게 “그간 제대로 못했던 것 용서해주세요. 앞으로 더 잘할 거예요”라며 울먹였다. 그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이 여사가 가족들을 대표해 벙어리장갑을 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지금까지 다섯 번 살아났잖아요. 이번에도 꼭 다시 일어나요.”

간곡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잠시 후 김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이 여사 등 가족들은 통곡했다. 가족들과 권노갑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은 차례로 “사랑해요”라며 고별인사를 했다. 이 여사는 눈물을 흘리며 영면한 김 전 대통령의 발을 쓰다듬었다. 발에는 이 여사가 직접 뜨개질해준 밤색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한 이후 줄곧 곁에서 배와 발바닥을 쓰다듬으며 쾌유를 기도해왔다.

47년 동안 고락을 함께했던 반려자의 손길을 느꼈을까. 울음소리에 묻힌 김 전 대통령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고 현장에 있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임종 현장에 있던 김 전 대통령의 전 주치의 장석일 성애병원장은 “심장 정지 후 편안하게 돌아가셨다”며 “특별히 뭔가 메시지를 남기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 위중→안정→위중 반복하며 상황 급변

김 전 대통령은 17일 오후 11시경부터 산소포화도와 혈압이 낮아지는 등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혈압상승제 투여량을 늘리고 산소 공급을 강화해 18일 오전 1시경 상태를 호전시켰다. 하지만 오전 6시부터 병세는 다시 나빠졌다.

오전 9시 박창일 연세대 의료원장이 바쁜 걸음으로 9층 중환자실로 올라간 데 이어 주치의인 정남식 연세대 심장내과 교수와 장준 호흡기내과 교수,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황급히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병원 전체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의료진이 혈압상승제 등을 이용해 집중 치료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후 1시 37분경 병원 관계자가 장례식장 건물 6층 교수 회의실에 마련된 임시기자실로 들어와 “김 전 대통령의 심장이 오후 1시 35분 정지했다”고 외쳤다. 3분 후 “김 전 대통령의 심장이 5분 만에 다시 뛰기 시작했다”고 정정해 사람들을 안도시켰다. 하지만 다시 3분 후 병원 관계자는 담담한 어조로 “김 전 대통령께서 18일 오후 1시 43분 서거했다”고 발표했다.

서거 사실을 최종 확인한 주치의 정남식 교수는 “서거 2시간 전부터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혈압상승제를 최대 용량, 100% 산소를 써도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병원 측은 김 전 대통령의 사망원인은 ‘다발성 장기부전’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료원장은 서거 후 기자회견에서 “7월 13일 폐렴으로 입원했지만 마지막에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심장이 멎었고 급성호흡곤란 증후군과 폐색전증 등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심폐소생술을 했느냐’는 질문에 “생명을 더 연장할 가능성이 있을 때 시도하지만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인해서 더 견뎌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해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 박지원 전 비서실장 ‘서거’ 발표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각국의 여러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내시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신 김대중 대통령께서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서거하셨습니다. 그동안 쾌유를 기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세계의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신 의료진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임시 빈소를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 특1호실에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가족들의 뜻을 받들고 정부와도 긴밀히 협조해서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