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엄수된 23일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일제히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영면을 기원했다. 이날 국장이 무사히 끝남에 따라 ‘포스트 DJ’ 정국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DJ가 평소 강조해온 ‘화해와 용서’의 물길이 정치권에 밀려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달 미디어관계법 처리 후 꼬여 있는 여야 정치권이 어떻게 관계 개선에 나설지 주목된다. 9월 정기국회 일정이 코앞에 닥친 상황도 여야가 어떤 식으로든 그동안의 앙금을 털어낼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한목소리로 ‘애도’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23일 논평에서 “고인이 평생 추구했던 의회민주주의 발전은 정치권의 남은 숙제가 됐다”며 “분열과 갈등을 넘어 화해와 통합의 길, 남북화해의 길을 열어 가는 데 우리 모두 책임을 다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이번 서거를 계기로 정치적으로 분열되고 갈등을 빚었던 분들, 화합하지 못했던 많은 지역이 화해와 통합의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이번 서거를 계기로 망국적 지역감정이 해소되고 동서와 남북 화합의 계기가 된다면 그분의 공과가 더욱더 가치 있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의 영원한 동지이자 경쟁자인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에 내건 조기가 눈길을 끌었다. YS는 20일 오전 아침운동을 나가며 비서진에게 “국장으로 결정됐으니 조기를 달라”고 지시해 23일까지 조기를 달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영결식에 직접 참석한 YS는 장례 기간 일부 약속을 연기하는 등 평생 ‘애증’으로 얽힌 DJ에 대해 마지막 예우를 했다.
○‘DJ 서거’, 국회 정상화 계기 될까
여야는 이번 주 중반부터 김정훈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우윤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만남을 계기로 대화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회동의 결과가 국회 정상화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당은 하루빨리 야당과 9월 정기국회 의사일정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다음 달 1일 정기국회가 열려야 하므로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하더라도 다음 달 1일 예정대로 국회를 개회하겠다고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개회 전 야당과의 극적인 의사일정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 부대표는 “민주당이 더는 장외 투쟁을 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국회 복귀를 기대한다”면서도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오면서 어떤 조건을 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무조건 등원’을 촉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원내투쟁으로 노선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수긍하면서도 한나라당의 조기 등원 요구에는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국회 복귀에 대한 당내 의견 수렴에 나설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 부대표는 “다음 주 중 김 전 대통령 서거로 미뤄진 당내 의원 의견 수렴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민주당 내에선 등원 전에 여당이 어떤 식으로든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국회에 들어가 투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여당의 어떠한 양보도 없는 상황에서 서거 정국 직후 곧바로 등원할 수야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야 간 물밑 협상이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된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