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내밀었던 北, 돌아가선 딴청?

  • 입력 2009년 8월 25일 03시 06분


이산가족 상봉 맘은 들뜨는데…24일 경기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에서 직원들이 추석 전후로 예상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남측 이산가족의 신청을 받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이산가족 상봉 맘은 들뜨는데…
24일 경기 수원시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에서 직원들이 추석 전후로 예상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남측 이산가족의 신청을 받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이산상봉 실무접촉 묵묵부답…복원했던 직통전화 바로 단절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전달받은 것을 계기로 향후 남북 당국 간 접촉이 전망되지만 언제 어떤 수준에서 대화가 이뤄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이번 만남에서 상대방의 의중을 탐색하는 데 주력한 양측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대화를 시작하자는 것 자체에는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어떤 급에서 어떤 의제를 갖고 할 것이냐다.

○ 멀고 먼 남북대화의 길

남북 양측은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앉힌 뒤 비핵화 등 대북정책 목표를 추구한다는 생각이다. 현 정부 들어 남북 당국 간에는 고위급 대화채널이 가동된 적이 없다. 북핵 6자회담 관련 실무접촉이 간헐적으로 있었고 올해 4월부터는 개성공단에서 당국 간 실무회담이 열렸지만 의제는 개성공단 법규 및 계약 개정 등에 제한됐다. 이번 북한 조문단의 서울 방문 이후 정부 내에는 고위 당국자 접촉을 가능한 한 빨리 제안하자는 ‘협상파’의 입지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역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더딘 상태에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자 출구는 남한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이번 조문단의 2박 3일 일정을 통해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남북 협력이 필요하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메시지까지 전달한 만큼 남한 측의 대화 제의를 기다리고 있을 공산이 크다.

남북이 우선 논의해야 할 의제도 이미 나와 있다. 북한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합의한 교류협력 5개항 가운데 관광 재개(금강산, 개성, 백두산)와 개성공단 활성화 문제, 그리고 추석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 등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의제는 사안의 성격상 장관급 이상 고위급 회담에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은 고위급 회담에 포함시킬 수도 있고 별도로 진행할 수도 있다.

문제는 대화의 시작이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우선 시작하고 그 자리를 통해 고위급 회담 일정을 논의할 생각이었다. 정부는 20일 북한 적십자사에 통지문을 보내 26∼28일 금강산에서 만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24일 현재 답을 하지 않고 있어 회담이 제때 열리기 힘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북측은 조문단의 서울 방문을 계기로 복원했던 남북 판문점 직통전화 채널도 24일 오전 다시 단절했다.

○ 청와대, “정상회담 얘기 일절 없었다”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 북한 조문단이 22일과 23일 각각 남측 인사들과 이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24일 해명자료까지 내며 강하게 부인했다.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은 해명자료에서 “어제 이명박 대통령의 북한 조문단 접견에서는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가 있었을 뿐 정상회담과 관련된 사항은 일절 거론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어제 접견에서 그런 언급은 없었다”며 “남북관계 기사는 막 쓰면 안 된다”고 언론의 협조를 당부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1년 반 동안 그렇게 경색 국면이었는데 북측이 갑자기 정상회담을 제의하겠느냐.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는 격이다. 오늘 아침 전 세계 어느 외신에도 그런 식의 기사가 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북측이 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얘기는 와전된 것으로 청와대는 판단하고 있다. 실제 22일 오전 김 비서 일행과 전직 통일부 장관의 조찬 모임에서 정동영 의원 등이 김 비서에게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김 비서는 “냉전 잔재는 없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결심이 중요하다. 나는 모든 사람을 만날 거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겠다. 장애물이 많이 나타날 거다. 석 자 얼음이 하루아침에 다 녹을 수 있겠는가”라고 답했다.

이 자리엔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보가 참석했고, 김 비서는 따로 김 특보에게 대통령 면담을 희망한다는 뜻을 피력했는데 이것이 마치 북측이 여권 핵심 관계자를 통해 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처럼 알려졌다는 것이다. 김 특보는 “북한 조문단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면 두 정상이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언급했지만 이것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인지는 모르겠고, 이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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