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위급 조문단이 이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하고 26일부터 금강산에서는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이 열리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은 2000년 이후 남북한 당국이 서로의 관심사를 부담 없이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회담을 계기로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할 고위급 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정작 원하는 것이 이뤄졌지만 일부 정부 당국자들은 향후 북측과의 대화 진전에 대해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화에 따르는 ‘청구서’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과거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 해결의 대가로 남측의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다. 한 전직 통일부 관료는 “북한은 한 번도 공식적으로 쌀과 비료를 요청한 것이 없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관련 회담이 끝난 뒤 만찬 등에서 우리 측 당국자들에게 귓속말로 쌀과 비료 등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23일 이 대통령에게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자”고 전한 메시지도 결국 ‘같은 민족끼리 좀 도와 달라’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정부가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그리 걱정할 일도 아니다. 현 장관은 올해 3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남북 대화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남북대화는 북한의 변화, 즉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화, 민주화라는 현 정부 대북정책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북한과 마주앉아 대화하되 북한의 변화라는 목적을 잊지 않으면 된다. 대북지원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변화시킨다면 과거보다 더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문제다. 대북 햇볕정책을 편 과거 정부가 비난받은 이유는 남북대화와 대북지원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인양 행동했기 때문임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신석호 정치부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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