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변못해 지지율 하락” 李총재 책임론 우회적 제기
“한나라때 제왕적 총재 같다” 당내 일부서도 불만 표출
자유선진당의 양대 기둥인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대표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심 대표의 국무총리 기용설을 놓고 두 사람의 물밑 신경전이 표면화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총재는 26일 당5역 회의에서 “심대평 대표의 총리 기용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를 향해 심대평 총리 카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이 총재는 2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여당과의 정책공조나 연대관계가 형성돼서 그것 때문에 총리로 간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관계가 안 되면 갈 수 없다. 현재 공조나 연대는 없는 것 아니냐”고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 총재 주변에서는 “가뜩이나 충청권에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심 대표가 총리로 발탁됐다가 여론이 나빠질 경우 지방선거에서 약진하겠다는 선진당의 구상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심 대표가 반격에 나섰다. 심 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선진당 지지율이 낮은 것은) 선진당이 국가발전이나 국민의 행복 증진, 지역의 이익 대변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라며 “국민통합 실현과 당의 지지 기반인 충청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큰 정치를 정책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안팎에서는 그동안 이 총재를 중심으로 당이 운영됐지만 당 지지율은 충청권에서조차 5%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 총재의 책임론을 우회적으로 제기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심 대표는 평소 주변에 “선진당이 충청권의 틀에 갇혀서는 정책 야당으로 발돋움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심 대표가 자신의 총리 발탁을 막고 있는 이 총재에 대해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면서 여권과의 적극적인 연대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내에서는 심 대표가 이 총재와 따로 만나 ‘총리 발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봐 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 대표가 이 총재의 접근 방식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당내에서는 “이 총재가 예전 한나라당 시절 제왕적 총재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거나 “국익 차원에서 큰 틀의 정치를 생각하는 노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와 여권을 향한 불만도 없지 않다. 사전 조율이 안 된 총리설을 흘리는 바람에 당에 분란만 생겼다는 것이다. 선진당의 한 의원은 “청와대의 정치력이 수준 미달이다. 당내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 정책 공조의 틀을 갖춘 후에 총리 기용 문제를 거론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