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8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에 참석한 북측 대표단이 남한에 쌀이 남아도는 문제를 거론하며 우회적으로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북측으로선 남측의 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30일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이산가족 상봉행사 일정을 협의하기 위해 금강산에 온 북측 대표단은 남측 대표단과 대화를 나누면서 “남한에는 쌀이 남아돌아서 정부와 농민들이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 중 일부는 구체적으로 “남측 농민들은 쌀값이 떨어져 고민이고 정부도 보관료가 많이 들어 걱정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 대표단은 회담장에서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만 언급했지만 26일과 27일 열린 대표단 만찬 등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자 쌀 이야기를 꺼냈다”며 “여러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당국자는 “북측이 비록 ‘쌀을 좀 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남측의 사정을 걱정해 준 것은 내심 쌀을 좀 달라는 취지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비록 우회적이지만 북측이 남측 당국자들에게 쌀 지원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비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이다. 정부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2006년을 제외하고 매년 쌀 40만∼50만 t을 차관 형식으로 북측에 제공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5월 정부가 옥수수 5만 t을 지원하겠다고 하자 이를 거부했다.
이 같은 북측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과거와 같은 대규모 식량 지원은 어렵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그동안 “쌀 40만∼50만 t은 순수한 인도적 지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고 이 쌀이 군대에 배급될 우려도 있다”고 말해왔다. 정부와 현대아산 등은 금강산 및 개성관광이 재개될 경우 관광 대가를 달러가 아닌 쌀 등 식량으로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