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미국 여기자 석방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북한이 우라늄 농축프로그램 핵개발 카드를 꺼내며 새로운 협박에 나섰다. 유엔주재 북한대표의 편지는 6월 13일 북한 외무성 성명에서 밝힌 일련의 핵개발 계획보다 좀 더 진전된 핵개발 상황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핵개발 가속화의 파장
유엔주재 북한대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수전 라이스 미 유엔대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핵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대표는 폐연료봉 재처리는 물론이고 우라늄 농축시험도 마무리 단계이며, 이미 추출된 플루토늄이 무기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추가로 제작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핵무기 연료 확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이 주장한 ‘우라늄 농축 결속’ 단계라는 것은 북한이 원심분리기 시제품 제작에 성공한 뒤 이를 원심분리기에 연결해 우라늄 농축을 위한 입출력 과정을 마무리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연구개발을 마무리하고 이젠 핵무기 원료로 활용될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북한의 이런 주장이 현실화됐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주장이 우라늄 농축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뜻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마크 비디케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대변인은 4일 성명에서 “IAEA는 플루토늄이 생산된 영변 원자로의 핵 관련 활동을 검증했지만 우라늄 농축 시설이 포함되지 않은 5개 시설물에만 조사단이 접근할 수 있었다”며 “우라늄 농축 시설에 대한 접근은 허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대표의 편지는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지속하는 가운데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이중접근법’을 나타낸 데 대해 북한도 핵문제와 대화문제는 별개라는 ‘북한식 이중접근’에 나섰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한편으로는 북한이 8월 한 달간 여기자 석방, 조문단 서울 파견, 남측 개성근로자 석방 및 개성공단 정상화 움직임 등 이른바 ‘평화 공세’에 나섰지만 적어도 핵문제에 관한 한 아무런 태도변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 셈이다.
외교소식통은 “유엔 안보리가 최근 아랍에미리트(UAE)가 북한의 이란 수출용 무기를 담은 화물을 압류한 것에 대해 북한에 소명을 하라고 한 것으로 안다”며 “북한 대표의 편지는 이에 ○ 군색한 북한의 처지
북한이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미국과 국제사회에 핵 위협을 가한 것은 북-미 직접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북한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는 군색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이 회람하기도 전인 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 내용을 공개했다. 마침 이날 서울을 방문하는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의식한 행보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이지만 미국에 대한 비난이 거의 없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게다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결정적으로 강경하게 만든 5월 2차 핵실험이 자신들의 본뜻이 아니었다고 변명하는 듯한 태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발행하는 조선신보는 이날 “조미(북미), 북남의 관계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조선반도의 대립구도 청산이 가능하다”며 북한이 미국 및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북한은 최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 여기자 2명을 석방한 이후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내놓을 카드는 전혀 없는 상태다. 북한 나름의 ‘평화공세’를 내세웠지만 대답 없는 미국에 대한 답답함이 이번 서한에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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