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차기 대선주자군이 예상보다 일찍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가 관심이다.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회복되는 시점에서 대선후보들의 조기 부상이 자칫 권력 누수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한나라당 원내대표단과 가진 만찬에서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할 일을 하고 가겠다”며 과거 대통령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신지호 의원이 건배사로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때문에) 집권 초 허니문도 없었지만 레임덕도 없는 대통령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하자 본인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 일화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내가 서울시장을 그만둘 때 직원들에게 퇴임식이 언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다음 날 오전 10시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 임기는 언제까지냐고 물었더니 근무시간이 당일 오후 6시까지라고 해서 ‘내일까지 기다릴 게 뭐 있느냐. 6시까지 딱 일을 하고 끝내겠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일하고 걸어서 시청을 나왔다”고 소개했다. 이어 매우 확신에 찬 어조로 “나는 내가 해야 할 결재를 끝까지 다 챙겼다”며 레임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대선주자들과의 향후 관계 설정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차기 주자군의 활동영역을 보장하되 이 과정에서 국정운영 동력이 훼손되는 상황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참석했던 한 의원은 “이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은 한곳에만 일을 맡기지 않고 서너 곳의 보고를 동시에 들으면서 경쟁과 견제를 시키는 방식인데 이런 방식을 대선주자들에게도 적용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해서도 적절한 경쟁을 유도해 한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자연스럽게 이들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말도 나온다.
물론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차기 주자 간 권력분점이 본격화하고 이후 총선 공천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역으로 국정지지도가 지금처럼 상승세를 유지하고, 10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일정 정도의 성과를 거둔다면 이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청와대가 내부적으로 내년 지방선거를 주시하는 이유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나라당 내에선 이 대통령의 지지도 상승으로 재·보선과 지방선거 구도의 큰 틀이 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기복이 심한 편이지만 지금 상황을 잘 유지하면 대권 바람에 휩쓸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며 “이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국정수행의 동력을 유지해가고 차기 대권 구도는 그 나름대로 전개되는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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