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형적인 ‘도발 뒤 손 내밀기’ 6월까지 핵위협 7월부터 유화정책 美와 대화 임박…中 원자바오 방북설
○ 南 향해서도 심리전 현정은 면담-DJ 조문단 파견 등 반북여론 완화 노린 적극적 행보
○ 멀어지는 北 체제 변화 후계논의 막고 ‘노동력 동원’ 강화 개혁개방 눈감고 50년대식 경제로 북한이 미국을 양자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고 중국 일본과의 관계도 진전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최근 지속적으로 대남 유화 정책을 편 데 이어 주변국들과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의 이 같은 변화는 올해 7월 이후의 대외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전환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 김정일 주도…과거의 재판? 북한의 최근 행보는 건강을 회복한 김 위원장이 7월 이후 대내외 정책 변화를 주도한 데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7월 8일 오전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김일성 15주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한 동영상을 조선중앙TV에 내보내면서 최고지도자의 건재를 외부에 과시했다. 그는 8월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에 끌어들여 3시간 반 동안 만났고 8월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는 4시간 동안 오찬을 함께했다. 북한의 대내외 정책 변화는 대내외적 위기도 반영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동서해안의 냉해와 수해 등으로 올해 식량 사정이 크게 나빠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외정책의 전환은 일면 1990년대 초반 및 2002년의 상황과 유사하다. 문제는 우선 북한이 국제사회를 다루는 낡은 방식이 다시 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북한이 핵 위협 등으로 긴장을 조성하면 중국이 나서 사태 악화를 막고 북한이 내민 손을 국제사회가 받아들이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벼랑 끝 공세→위기 관리→대화 유도’라는 계산된 전술이 여전히 먹히고 있는 것이다. ○ 중국의 등을 타고 미국 일본과 접촉 북한은 4월 5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미국과 국제사회를 자극했다. 북한의 공세는 6월 13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존재를 시인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7월 이후 분위기는 달라졌다. 북한과 국제사회의 극한 대립을 반대해 온 중국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7월 2∼14일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들을 순방하며 또다시 ‘중재 외교’에 나섰다.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는 같은 달 24일 “우리는 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북-미 대화를 희망한다고 발언했다. 그 직후 김 위원장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에 끌어들였다.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대립을 중국을 통해 푸는 ‘때리고 손 내밀기’ 전술은 1993년 이후 핵 위기 때 여러 차례 사용한 전술이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를 제대로 파악했고 계획적으로 대처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 내 대북정책 담당자들이 핵 문제를 호락호락하게 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고 1월 20일 출범과 함께 강도 높은 무력시위로 협상력을 높인 뒤 7월 이후 극적인 대화 제의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와 함께 중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2일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다음 달 초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고 북한과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북한의 명목상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일본 교도통신과 인터뷰를 한 것도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과 2002년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했다. ○ 대남 유화 공세도 면밀히 계획된 전술적 변화 북한의 대남 유화 공세도 사전에 면밀히 계획돼 7월 이후 실행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조선노동당이 주민들에게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발행하는 노동신문 5면 톱기사의 내용을 보면 7월 이후에 변화가 완연하다. 대남 및 통일문제를 다루는 이 코너는 6월까지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방과 대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지만 7월 이후에는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 등 남북 통일방안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대내외용 라디오를 통한 이명박 대통령 실명 비난 횟수도 6월 454회로 최대치를 나타낸 뒤 7월 275건, 8월 264건으로 줄어들었다가 8월 25일부터는 거의 사라졌다. 북한은 8월 10일 방북한 현 회장을 17일까지 현지에 체류시키며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을 명분으로 북한 체제 선전선동의 귀재인 김기남 조선노동당 비서와 대남 공작의 총책임자인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남한에 급파해 반북 여론을 완화하려 했다. 김철우 국방연구원 대외협력실장(언론학 박사)은 “최근 대남 심리전과 여론 선동전에 나선 북한의 무기는 대량살상무기(WMD·Weapons of Mass Destruction)가 아니라 대량선동무기(WMP·Weapons of Mass Propaganda)”라고 말했다. ○ 거꾸로 가는 대내정책에 주민 고통 커져 북한은 과거 대외정책 전환기와는 달리 경제 개혁과 개방에 나설 조짐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대내 정책은 오히려 더 보수적으로 회귀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7월 이후 후계 문제의 공론화를 막고 있다는 다양한 증언들은 현 체제를 유지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우리 장군님과 끝까지 뜻을 같이하자’는 구호를 조작해 넣은 사진을 노동신문 1면에 내보낸 것은 김 위원장이 7월 8일 모습을 드러내기 이틀 전의 일이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 대외관계 개선과 동시에 나진 선봉 자유무역지구를 개방하고 원화 가치를 절하하는 등의 제한적인 경제 개혁 개방조치를 단행했다. 북한은 2002년 이후에도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종합시장 도입이라는 제한적인 개혁개방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11일 북한 지도부가 대중 노력동원 운동인 ‘150일 전투’ 이후 ‘100일 전투’를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개혁 개방으로 나가기는커녕 1950년대식 대중동원 경제운용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