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8일 양자 또는 다자회담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것은 미국을 향한 변형된 제안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에 ‘다자회담도 할 테니 북-미 양자 접촉에서 핵협상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북한의 ‘다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대화 국면으로 급진전할지는 미지수다.
○ 6자회담? 5자회담? 4자회담?
김 위원장의 다자회담 참여 발언이 6자회담을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다자의 틀을 만들겠다는 의미인지는 분명치 않다. 북한이 그동안 “6자회담에는 절대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래리 닉시 미국 의회조사국(CRS) 선임연구원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의 공조 강화를 본 북한은 5 대 1의 구도로 북한을 압박하는 6자회담 구조를 반드시 깨려고 할 것”이라며 “북한은 북-미 양자대화를 주요 협상 창구로 하면서 새로운 다자의 틀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6자회담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다자회담을 고집할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6자회담 틀에서 고립감을 느꼈던 북한이 일본이나 한국, 러시아 가운데 일부를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일본을 6자회담에서 배제할 것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한미일 3국은 ‘6자회담의 복원’이 아닌 다른 형식의 다자회담은 용인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 미국과 북한, 평행선 달리나?
김 위원장이 이날 ‘양자 또는 다자’를 거론했지만 북한이 정작 관심을 두는 것은 미국과의 양자 담판이다. 핵개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인 만큼 미국과 북한이 직접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양자접촉을 실질적 북핵 협상으로 이어가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협상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도 미국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6자회담 참가국이 모두 참여하는 방식을 희망하고 있다. 조만간 열릴 북-미 접촉에서도 협상을 배제하고 철저히 6자회담 복귀 문제만을 얘기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더욱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다 해도 핵무기까지 포기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북한은 핵무기 폐기를 비핵화의 최종 단계로 설정하고 그 이전에 핵시설의 폐쇄, 불능화, 폐기 등 단계별로 ‘행동 대 행동’식 보상(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당분간 대북 제재를 계속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대북 제재는 북한의 대화 복귀가 아니라 실질적인 북핵 폐기가 이뤄지는 시점에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며 “특히 이번에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폐기하는 시점에나 대북 제재를 완전히 종료하는 이중 접근법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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