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核 중대 전환점, 그러나…
18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양자 또는 다자회담 참여 의사 표명은 과거에 되풀이되던 북핵 협상 패턴의 반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1990년대 이후 핵 개발을 지속하면서 국제사회와 갈등 및 대화 국면을 반복해 왔다.
○ 과거 핵위기-실험때와 패턴 비슷
최근 상황은 북한이 1994년 1차 핵 위기를 끝내고 미국과 제네바 합의에 이르는 과정, 2002년 2차 핵 위기 이후 6자회담을 시작하는 과정,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6자회담을 재개하는 과정 등과 유사하다.
북한은 1994년 7월 북-미 뉴욕 실무접촉에 합의하면서 1993년 이후 끌어온 1차 핵 위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키며 10월 제네바 합의에 이르렀다. 북한은 2차 핵 위기 때인 2003년 4월에는 전격적으로 ‘다자회담’ 수용을 시사하고 6자회담 테이블에 나왔다. 북한은 2006년 11월에도 전격적으로 6자회담 복귀를 발표한 뒤 다음 해 2·13합의에 서명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북한의 도발과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패턴은 동일했다. 북한이 1993년 국제사회의 핵 사찰 요구를 거부하면서 1차 핵 위기를 일으키자 미국은 1994년 6월 북한에 대한 국지적 공격을 검토했다. 북한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방북했을 때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시인하면서 2차 핵 위기를 촉발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자초했다. 북한은 또 2006년 10월 미국의 금융제재에 반발해 1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유엔 안보리는 결의안 1718호를 채택해 제재에 나섰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뚫고 대화 국면을 조성하는 전환점에는 항상 ‘중재자’가 있었다. 1994년 6월 북한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끌어들여 협상 국면을 조성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번의 경우처럼 중국의 역할이 커졌다. 2003년 3월에는 당시 첸치천(錢其琛) 부총리가 방북해 미-북-중 3자회담 개최를 이끌어냈다. 2006년 10월에도 당시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이 북한과 주변국들을 순회 방문하며 6자회담 재개를 주선했다.
○ 국제사회의 이해관계를 절묘하게 이용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늘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정부의 한 당국자는 “남한을 제외한 주변 4강대국은 스스로의 국가 이익을 위해 한반도에 분단이 계속되는 현상유지 상태(status quo)가 지속되길 바란다”며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시점에 대화의 손을 내밀면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것을 알고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중재자 역할을 하는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국과 일본 등 해양 세력을 막기 위해 북한의 건재를 원한다.
북한은 그동안 체제 유지를 위해 갈등과 대화 국면을 반복하며 시간을 끌어 왔다. 북한은 1990년대 초 옛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자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절대적인 국력의 약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핵을 개발해 미국 등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때로는 대화를 하며 끊임없이 시간을 끌어야 했던 것이다.
최근에도 북한은 2차 핵실험 이후 더 강력해진 국제사회의 제재와 식량난 등 내부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핵 위협으로 관심을 끌었으니 이제 대화로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고 다시 도발할 때까지 시간을 벌자는 것이 북한의 의도로 보인다. 이런 동일한 사이클이 이번에도 계속된다면 앞으로 향후 대화 국면에 대한 전망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한 당국자는 “북한은 늘 그랬듯이 대화 막판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대화의 판을 깬 뒤 새로운 갈등 국면을 조성할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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