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물살 타는 北-美관계 어디로…美한반도전문가 진단<上>

  • 입력 2009년 9월 21일 02시 56분


《북한 김정일 정권의 잇단 유화 공세로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도 '6자회담'을 전제로 북한과의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걸까. 미국 내 정통한 한반도 전문가 3인의 의견을 들어봤다.》


:데이빗 스트라우브: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전혀 서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한국학센터 부소장이 18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지난달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다자 대화' 언급에 대해 "일단 보도가 정확한지 지켜봐야 한다"며 "북한이 6자회담으로 되돌아오겠다는 뜻인지, 다른 형식의 다자 회담을 제안하려는 건지 현재로선 모호하다"고 말했다.

―한국내 일각에선 최근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 논란 등으로 떨어진 지지도를 외교문제에서 만회하기 위해 양자 대화로 돌아섰다는 해석까지 한국내에서 나온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바마는 북한의 의도에 대해 매우 회의적(skeptical)이다. 오바마가 북한과 접촉정책을 유지해야할 정치적 압력은 0%다. 사실 미국에서의 상황은 정반대다. 보수파와 우파에선 대통령이 북한과 어떤 상황에서든 대화하려 하면 비판한다. 북한에 대해 강하게 나가는게 국내 정치적 인기를 위해선 오히려 유리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핵정상회의와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 전에 북한, 이란 핵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서두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 해석은 미국을 정말 잘못 읽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데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그러므로 오바마 정부로선 서둘거나 해결책을 무리하게 밀어부칠 이유가 없다. 북한과의 어떤 접촉정책도 미국 국내정책을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북한과 대화를 한다해서 내년 NPT 회의 이전에 어떤 도움이 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리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 일각의 그런 해석은 근본적으로 워싱턴의 견해와 정책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오바마 정부가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검토하는 이유는 뭔가.

"매우 복잡한 문제인 북핵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주변국들의 지지를 가능한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미국에게 대화하자고 계속 초청하는데 미국이 어떤 대화든 안된다며 완강히 거부하면, 그것은 주변국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어려움을 줄 것이다. 6자 회담 참가국들의 연대를 유지하는게 매우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미국이 북한을 다루는데 있어 이성적이고 공정하며 열린 마음임을 보여줘야 한다. 만약 반대상황을 가정해보라. 미국이 모든 대화를 거부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비판적이 되고,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국제 여론의 지지와 공감대도 떨어질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6자 회담 컨텍스트 내에서 양자대화를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오바마 정부의 정책전환으로 봐도 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초부터 분명하게 북한과 6자 회담 컨텍스트내에서 양자대화를 가질 용의가 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6자 회담내 양자대화'에서 '6자 회담을 촉진하기 위한 양자대화'로 바뀌었다는 분석도 있다.

"미 행정부는 '6자 회담 컨텍스트내 양자대화'라는 의미를 항상 모호하게 남겨둬왔다. 지난 몇 개월간 국무부 대변인의 몇몇 발표는 오독(誤讀)될 수 있는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의 지난 9개월간 성명 전체를 보면 접근법의 변화가 전혀 아님을 알 수 있다. 일관돼 있다. 현재 '6자 회담내 대화'라는 전제는 분명하게 형성돼 왔다. 미국 고위관리들이 지속적으로 관련국을 방문해 북한의 상황과 미국의 접근법에 대해 심도있게 협의했다. 미국이 가지려는 양자대화는 분명히 6자 회담의 틀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그런 걸 거부하면 미국은 양자대화를 확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계속 도발하던 올봄엔 미국은 양자대화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양자대화라는 표현이 다시 등장한 것만도 변화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바마 정부의 성명서들을 돌아보면 일관성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규모가 큰 정부다. 때로는 일부 관리의 발표문이 전체의 틀에서 삐져 나오고, 오독(誤讀)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전체의 성명을 종합해서 보면, 매우 분명하다. 미국은 언제나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으며, 그것은 반드시 6자 회담의 컨텍스트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평양 방문이 만약 이뤄진다면 그것도 분명히 그 컨텍스트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CNN 등 일부 미국 언론도 미 행정부의 양자대화 용의 발표 직후 '극적인 전환'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나.

"미국 언론들도 당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CNN 등의 그런 표현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오바마 정부의 많은 관리들은 빌 클린턴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때문에 한국에선 '오바마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정책을 반복할 것이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에 클린턴 정부 출신들이 많다는건 북한을 다룬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걸 의미한다. 미국 고위관리들이 '같은 말(馬)을 두 번 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 행정부가 당시 북한에 새로운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봐도 되나?

"그렇지 않다. 전적으로 오해다. 클린턴 전대통령의 임무는 오로지 인도적 미션이었다. 클린턴 전대통령의 방북이 어떤 식으로든 현재 미국의 대북 대화 정책에 의미있게 관련돼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잘못 짚은거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주 '인센티브'란 단어를 꺼냈다. 한동안 사라졌던 인센티브 같은 용어를 다시 꺼낸 것은 대화 모멘텀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시도 아닐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힐러리의 발언은 한국과 일본의 관리들이 말해온 '포괄적 패키지'와 같은 얘기였다. 항상 있었던 발언이다. 힐러리는 그걸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인센티브 발언은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6자 회담에 돌아오고 핵 야욕을 포기하면 패키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일관되게 말해왔다."

―한국에선 오바마 정부의 양자대화 용의를 2007년초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양자협상에 비견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시 2006년 9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국제 제재가 가해지고 냉각기가 이어지다 힐 차관보가 단독으로 북한과 양자협상에 나서 상황을 반전시켰다.

"지금의 오바마 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 임기 종반 2년간의 상황을 비교하는건 전적으로 부정확한 분석이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 9개월간 고위 관리를 한국 일본 베이징 등에 거듭 보내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컨센서스를 형성해왔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하려 하지만 이는 6자 회담에 바탕해 북한의 회담 복귀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왔다. 보즈워스 대표가 만약 방북한다면 그는 분명한 메시지를 가져갈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에 돌아와야하며 미국은 절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전달할 것이다. 만약 북한이 그걸 거부한다면 오바마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지속하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스콧 스나이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화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신호는 없다. 북-미 양자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이는 그야말로 양자간의 인식차를 좁힐 대화(dialogue)이지 협상(negotiation)은 아니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정책연구소장은 1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향후 재개될 가능성이 높은 미국과 북한의 양자대화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스나이더 소장은 북-미대화 재개의 동인(動因)에 대해 "북한의 적극적인 대화의지 표명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라며 "미국이 대화를 서둘렀다기 보다는 반응적인(reactionary) 현상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근본적인 비핵화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대북 대화를 재개하는 것은 그동안 강조해 온 미국의 원칙을 양보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북한이 대화를 갈구하는데 마주 앉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천명해 온 정책기조에 맞지 않는다. 북한의 꽁무니를 쫓아 다닌 것도 아니고, 북한의 대화요구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가 취한 것은 한국을 포함한 유관국과의 정책협의였다. 전술적인 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감과 유연함의 표출이다."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데….

"평양방문은 장단점이 있는 카드다. 제3국 대화의 경우 최고위급 인사를 만날 수 없지만 평양을 찾으면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을 방문했는데도 북한을 비핵화의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실패한다면 전체 프로세스가 실패로 규정지어질 위험성은 남아있다. 뉴욕채널 등을 통해 방북의 목표가 무엇이고 어떠한 성과가 있어야 하는 지를 사전에 긴밀히 협조한 뒤 방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화무드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는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결의하고 있다. 또한 6자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제재를 중단하라는 내용은 없다. 대화재개와 안보리 결의는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워싱턴= 하태원 특파원 triplet@donga.com

:고든 플레이크:

"대북정책에 관한 한 서울과 워싱턴엔 시차(時差)가 없다. 오로지 한국의 일부 언론과 정치권 일각에서만 한미 양국 사이에 틈(gap)이 벌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재단 사무총장이 18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플레이크 사무총장은 지난해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후보의 외교정책 자문그룹 핵심 멤버였다.

―오바마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정책 전환을 하는 조짐이 있는가?

"전혀 아니다. 한국의 진보파 정치인들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은 '미국이 변화하고 있으니 한국도 대북정책을 바꾸라'고 이명박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을 바꾸라는 아무런 압력도 없다. 대북 관계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미국 유권자도 없다. 오바마 정부가 서둘러 북한과 타협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일관되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양자 대화 용의를 밝혔는데 이는 변화 아닌가?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때부터 매우 분명하게 강조해왔다. 북한과 언제 어디서나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정부 출범 초기에도 보즈워스 대표가 그렇게 얘기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정부 임기 말기의 대북 대화와 지금 상황을 비교하면 큰 경계선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것과 '6자회담을 버리고 이를 양자대화로 대체할 용의가 있다'는 건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바마 정부는 그 점을 매우 분명히해왔다. 북한과 양자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며 대화는 근본적으로 6자 회담에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그 원칙에서 전혀 변화가 없다. 오바마 정부는 그런 접근법을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긴밀히 협의하고 조율하는데 성공해왔다. 관련국들은 미국이 북한에 5자의 단합되고 공유된 의견을 전달하는게 북핵 문제 해결에 해(害)가 될게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미국은 6자 회담을 버리거나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2006년 9월 북한의 1차 핵실험에 이어 벌어진 2007년초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양자협상 국면과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일부에서 힐 차관보 같은 행동이 재연되는걸 우려하는걸 알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힐 차관보가 북한과 양자협상을 할 때 북한은 여전히 6자회담에 참여중이었다. 당시 힐 차관보는 주변국들과 협의없이 단독으로 양자협상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 보즈워스 대표는 주변국에 여러차례 가서 설명했다. 다른 참가국들도 대화에 동의했다. 그리고 유엔 제재는 중단되거나 지연되지 않을 것임에도 다들 의견을 같이했다. 미국은 (대화는 하지만) 양자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6자회담을 양자협상으로 대체하는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그런 입장을 설명하고 5자가 단결돼있음을 설명하는건 전혀 정책 변화가 아니다. 대선때부터 분명히 해온 것이다. 변한건 북한이지 워싱턴이 아니다. 지금과 힐 차관보 때와는 대표단의 성격과 대화의 본질이 다르다."

―한미 정책 공조는 어떻게 평가하나.

"오바마 정부 출범 9개월간 북핵 정책과 관련해 정말 성공한게 있다. 우선 관련국 간에 단결되고 공유되는 포지션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북핵 문제에 관한한 워싱턴과 도쿄, 서울간엔 시차가 없다고 본다. 올 1월 오바마 정부 출범 직전 상황을 돌이켜보라. 당시 한국 일각에선 '(진보성향의) 오바마 정부가 서울과 도쿄를 버리고 북핵 정책에 앞서갈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당시 한국의 진보파 인사들은 워싱턴에 와서 '미국이 앞서가면 남북관계만 동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돌이켜보면 어이없는 일이다. 오바마 정부 출범후 모든 대북 행동은 긴밀하고 신중하게 협의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오바마 정부가 이룬 또하나의 성공은 제재와 대화의 균형이다. 지난달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당시를 생각해보라. 클린턴 방북후 제일 먼저 필립 골드버그 대북 제재 조정관이 기자회견을 하고 서울, 도쿄에 갔다. 대북 제재 공동전선은 변함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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