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日정부, 역사 직시할 용기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왼쪽)와 악수한 뒤 자리를 안내받고 있다. 뉴욕=안철민 기자

■ 한일정상 뉴욕서 회담
日 과거사 앙금털기 적극적
“한국선 내 아내가 더 인기”
‘6자 결속’ 북핵해법 일치
“제재-압박 불가피” 공감

미국 뉴욕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오후(현지 시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35분간의 회담에서 한일 과거사에 대한 기본 인식을 공유했으며 북핵 문제에 대해선 ‘찰떡궁합’을 예고했다.

○ 역사인식 공유

두 정상의 첫 화제는 새로운 한일관계였다. 이 대통령은 “양국이 서로 신뢰하고 가장 가까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노력해 나가자”고 말을 꺼냈고, 하토야마 총리는 “민주당 새 정부는 역사를 직시할 용기를 갖고 있다.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화답했다고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전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역사 직시’ 언급은 과거사 청산에 대한 전향적인 자세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 어떤 조치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우리 정부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방한이 과거사에 대한 근원적이고 상징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하토야마 총리의 성향으로 볼 때 일왕 방한에 적극성을 보일 수 있다는 관측과 일본 내 보수적인 여론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교차한다. 정부 관계자는 “다음 정상회담 때 하토야마 총리가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뛰어넘는 수준의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틈새 없는 북핵 공조 확인

하토야마 총리는 북핵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북한의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대해 이웃나라로서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 바람직하지만 필요하다면 국제공조를 통한 제재와 압박도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북한이 유화정책을 쓰고 있는데 국제사회가 공조해 제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아직 핵을 포기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6자회담 국가들의 강력한 결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하토야마 총리도 공감을 표시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가까운 시일에 북-미 접촉이 있을 것이라는데 6자회담의 재개로 이어지기를 강력히 기대한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도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고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양자회담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밝혔다.

회담 말미에 이 대통령은 하토야마 총리의 부인이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인한마당에서 축사한 것을 언급했고, 하토야마 총리는 “한국에서는 아내가 나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화답하는 등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이 수석은 전했다.

뉴욕=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日궁내청 “일왕 외국방문은 현안 해결용 아니다”▼

일본 궁내청이 일왕의 외국 방문은 현안 해결용이 아니라며 일왕의 방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궁내청은 일왕의 동정과 외유 일정 등 왕궁 관련 사무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방한 요청에 다소 부정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궁내청의 하케다 신고(羽毛田信吾) 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반적으로 양 폐하(일왕 부부)는 순수한 국제친선을 위해 외국을 방문한다”며 “국제적인 현안 사항 및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