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는 팸플릿을 통해 2006년부터 한국의 북한대학원대와 진행하고 있는 ‘북한 국제문서 조사 사업(NKIDP)’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 센터는 현재 소련과 동독, 루마니아 등 옛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보관하고 있던 북한 관련 외교문서를 입수해 분석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 센터를 통해 1971∼72년 동서 진영 간 데탕트 기간의 남북관계를 보여주는 비밀문서 39개를 입수해 보도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10월유신 직전 두 차례에 걸쳐 이를 북한에 예고한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밝혀졌다.
영어로 번역된 동유럽 국가들의 외교문서를 통해 남북관계의 한 장면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북한은 38∼39년 전 남한과 주고받은 대화, 남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 등을 비교적 소상히 동유럽 우방들에 브리핑했다. 얼마나 많은 남북관계사의 비밀이 외교문서로 동유럽 국가에 보관되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우드로윌슨센터의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보도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 정부와 연구기관들도 독자적으로 ‘NKIDP의 한국판’을 운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옛 동독 정보기관인 ‘슈타지’의 비밀문서를 비롯해 동유럽 국가들의 외교문서는 한국 현대사와 남북관계사의 비밀 보관 창고”라고 말했다. 그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가 열리기 전 김포공항에서 벌어진 폭파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도 비밀이 해제된 슈타지 문서를 통해 밝혀진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 정부도 국사편찬위원회 등을 통해 독립운동사를 고증할 해외 자료들을 수집해 왔지만 북한현대사와 남북관계사 전반으로 확대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간의 동유럽 외교문서 수집 활동도 일부 연구자의 개인적인 노력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신종대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우리의 문제를 외국의 문서나 시각으로 계속 재단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 스스로의 활발한 문서 발굴과 번역 소개, 그리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남북관계사의 이면을 이젠 우리의 힘으로 평가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신석호 정치부 kyl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