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변화된 안보여건과 국방예산 등을 감안해 병력 감축 계획을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병력 감축과 맞물려 있는 복무기간 단축 계획을 철회 또는 수정할 경우 반군(反軍) 여론 등 적지 않은 파장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국방개혁이 예산문제로 차질이 불가피하고 북한의 핵 보유 등 군사적 위협은 가중된 상황에서 과거 정부가 결정한 병력 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을 강행하는 것이 적절한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은 최근 군 안팎에서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육군 병력을 2020년까지 30% 감축된 38만여 명으로 줄일 경우 유사시 95만 명에 달하는 북한군 지상병력의 공세를 저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한다. 특히 서울 수도권이 북쪽으로 확장되면서 군사분계선(MDL)과의 거리가 15∼20km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한국군이 개전 초기 최전선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적정 수준의 지상병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12만 명에 달하는 북한군 특수부대의 동시다발적 후방침투에 대비 할 능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박사는 2005년 말 한 연구보고서에서 “한국군의 육군 병력 감축이 북한군 특수부대와 같은 은폐된 위협에 대한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예산 부족으로 무기 도입과 노후장비 교체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병력을 감축하면 전방군단과 사단 등은 충분한 능력 없이 작전지역만 4∼7배 늘어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북한 급변사태나 향후 남북 군사통합 과정에 따른 북한 안정화작전을 고려해 병력 감축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부 전문가는 국방개혁의 모델이 됐던 미국의 ‘군사혁신’이 낳은 부작용도 지적한다. 미국의 군사혁신은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전쟁 초반 정규전에선 효과적이었지만 안정화작전 등 비정규전에서는 병력 부족 탓에 수천 명이 전사하는 등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군 고위관계자는 “북한 급변사태 때 한국군이 북한 안정화임무를 수행하려면 최소 50만 명의 지상병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다”고 말했다.
군 복무기간 단축이 더는 정치적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단골 메뉴가 돼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복무기간 단축은 대통령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공약이었다. 복무기간은 계속 줄어 2003년 이후 육군 기준으로 24개월로 유지되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14년까지 18개월로 6개월을 더 줄이기로 했다. 한 야전지휘관은 “복무기간 단축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내년 하반기부터 병력의 질적 저하 현상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김학송 유승민 의원은 올해 행정부 재량으로 단축할 수 있는 복무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각각 3개월, 2개월로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일단 결정된 병력 감축과 복무기간 단축의 재검토를 추진할 경우 야기될 반대 여론과 정치적 파장 때문에 군이 먼저 이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군 고위관계자는 “복무기간 단축을 재조정한다고 할 경우 거센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진지한 검토와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현역)병 복무 적정기간을 검토하겠다”면서도 “매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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