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상봉] 이모저모

  • 입력 2009년 9월 28일 12시 21분


사흘간의 짧은 상봉..다시 기약 없는 이별

사흘간 짧은 만남의 끝은 또 기약없는 이별이었다.

28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작별상봉'은 눈물 바다였다. 60여년 만에 다시 만난 2박3일은 꿈처럼 지나가고 다시 '이산'이란 현실이 닥쳐왔다.

=작별상봉 시작=

0...작별상봉은 오전 9시5분 남측 가족들이 금강산호텔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북측 가족들은 15분정도 먼저 도착해 번호표가 세워진 둥근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호텔 로비에서는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북한 여성 20여명이 줄지어 서서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라며 남측 가족을 맞았다.

대한적십자사와 현대아산측은 전날 남측 가족이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사고 때문에 이날은 계단 곳곳에 직원들을 배치해 고령 이산가족과 보행이 불편한 가족들을 도왔다.

=납북어부 남매 "이런 기회가 또 있는 것도 아닌데..."=

0...남측 노순호(50)씨는 작별상봉 자리에서 22년전 동진 27호를 탔다가 납북된 동생 성호(48)씨를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

아무 말도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누나가 안긴 채 가슴에 얼굴을 비비자 "이제는 눈물도 안 나온다"고 말하던 남동생도 눈물을 훔쳤다.

누나 순호씨는 "남매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게 가슴이 아프다"며 "이런 기회가 또 있는 것도 아닌데"라며 울음을 쏟았고 동생 성호씨는 "누이는 통일이 오래 걸릴 것 같으냐, 통일은 이제 머지 않았다"고 달랬다.

남행 버스를 탄 누나 순호씨는 올케인 윤정화(44)씨와 조카 노충심(21)씨의 손을 잡고 "아버지 잘 모셔라. 올케만 믿고 간다"고 당부했다.

동생 성호씨 가족들은 누나를 보낸 자리를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타향살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목놓아 불러=

0...김영자(83)씨는 북쪽의 두 여동생과 조카를 끌어안고 흐느끼며 타향살이를 불렀다.

김씨는 "타향도 내 고향이 됐으니까 이제 내 사는 곳도 괜찮다"고 말했다.

큰 언니의 타향살이 노래가 끝나자 막내 동생 월선(66)씨가 '우리의 소원'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깨동무를 한 자매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목 놓아 불렀다.

=80대 아버지, 60대 아들에 "나 업어달라"며 달래=

0...김기성(82)씨는 1.4후퇴 때 북한에 두고 온 아들 정현(63)씨에게 "어렸을 때 내가 업어줬으니까 오늘은 나를 업어줘 봐"라고 농담을 건네며 이별이 아쉬워 우울한 아들을 달랬다.

김씨는 검고 거칠어진 아들 손에 자신의 손을 대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번 고개를 떨궜다.

김씨는 기자에게 "이 놈 코 위에 곰보 생긴 게 어렸을 때 마마 왔는데 이 놈 엄마가 코 위의 딱지를 떼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씨는 딸 정애(61)씨와는 볼을 비비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부녀는 한 손으로 서로 과자를 먹여주기도 했다.

=상봉 종료 안내에 금세 눈물바다=

0...9시50분 장내방송으로 '상봉을 곧 종료하겠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오자 행사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가족들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고, 남북 양측의 취재진과 행사진행 요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상봉을 마친 남측 가족들은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이용해 1층 입구에 기다리던 현대아산의 버스에 올랐다.

10시5분 남측 가족이 출발준비를 마치자 북측 가족들은 호텔 입구에 한 줄로 늘어서 배웅 채비를 했다.

=북측 가족들, 버스에 매달려 오열=

0...작별 상봉장에서는 북측 가족중 젊은 편인 아들, 딸 등이 고령의 북측 가족들에게 "버스에 탄 가족 만나러 절대 앞으로 다가가지 마시라요"라고 당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는 북측 당국이 사전에 작별 상봉과 배웅 과정에서 통제에 따라 질서를 유지할 것을 당부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측 가족을 태운 버스가 10시10분께 시동을 걸자 3∼4m 밖에 늘어서 있던 북측 가족들이 버스에 매달려 오열했다.

남측 가족들은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북측 가족과 안타까운 이별을 했다.

북측 이흥선(77)씨는 남측 오빠인 이강영(81)씨에게 "오빠 잘 가요"라며 손수건을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

무전기를 든 북측 '보장성원(행사 진행요원)'들은 "차가 곧 출발합니다"라며 북측 가족들을 제지했고, 이를 취재하던 남측 사진기자들에게 고함을 치며 밀쳐내기도 했다.

하지만 물러났던 북측 가족들이 다시 차창으로 몰리면서 버스는 쉽게 떠나지 못했다.

= 80대 오빠에게 "오래 살아"=

0...김걸(80)씨를 보내는 북측 여동생 은식(67), 은자(65) 자매는 버스에 탄 오빠를 향해 "오빠 오래 살아"라고 외치며 흐느꼈다.

은식씨는 "우리 걱정하지 마십쇼"라고 당부했으나 김씨는 여동생들과 작별이 괴로운 듯 끝내 눈을 지그시 감고 말았다.

김씨는 1.4 후퇴 때 인민군의 징집을 피해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여동생들과 헤어졌다.

1.4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남한으로 내려온 김문형(74)씨는 여동생들과 헤어짐이 아쉬운 듯 마지막 한 장면까지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애썼다.

강범락(84)씨도 다시 북한에 두고 갈 차창 밖 두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떨리는 두 손으로 잡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강씨는 6.25때 인민군에 긴급 동원됐다가 유엔군에 붙잡혀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두 아들과 헤어졌다.

=북측 관계자들, 당국대화 전망에 =

0...북측 행사 관계자들은 추석계기 이산상봉 1진 행사가 별다른 사고나 마찰없이 무사히 종료된 데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북측 보장성원들의 활동을 현장에서 지휘한 홍시건 참사는 작별상봉이 열리는 동안 남측 취재지, 행사요원들과 만나 "상봉행사 이후에 당국대화가 어떻게 진행될 것 같으냐"라고 묻는 등 이번 행사후 남북관계에 촉각을 세웠다.

북측 관계자들은 전날 장재언 북한 조선적십자회 위원장이 유종하 한적 총재와 만나 남측에 우회적으로 대북지원을 요구했다는 남측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탐색하기도 했다.

북측은 이산가족들이 행사장을 모두 떠난 뒤 남측 기자단에 남북기자단의 공동 기념촬영을 제안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60대 북측 여동생에게 "키 좀 커라"=

0...황하영(73)씨는 자신보다 허리가 굽은 북측 여동생 영옥(65)씨에게 버스 창밖으로 손을 내밀면서 "영옥아, 키 좀 커라"라고 이별의 안타까움을 농담으로 감췄다.

농담이었지만 너무 어려서 헤어진 동생의 키가 너무 작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그래도 여동생이 통곡을 멈추지 않자 황 할아버지는 "너무 상심 말라"면서 버스 창문에 매달린 여동생의 손을 쉽사리 놓지 못했다.

="내비게이터로 꼭 찾아간다" 개성주소 적어=

0...설명희(73)씨는 황해도 개성에 사는 동생 집에 가볼 것인 것처럼 자세한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묻고 "요즘 남측에서는 내비게이터라는 게 있어 어디든지 찾아갈 수 있다"면서 "꼭 찾아가겠다"고 동생을 위로하고 건네준 영양제는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네가 꼭 먹어라"며 연방 당부했다.

설씨는 가져온 선물과 미화 달러도 부족한 듯 한사코 괜찮다는 동생에게 자신의 시계를 풀어주면서 "야 임마, 이건 형이 주는 거니까 받아"라고 종용했다.

이에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를 주려던 동생은 형이 뿌리치자 "대신 절이라도 받으시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꾸벅 절을 한 뒤 형을 와락 껴안고 "잘 가시오 형님, 고향으로 오셔야 돼. 건강하셔야 돼"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무표정하다 작별 확성기 소리에 눈물 와락=

0...상봉 사흘 내내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해 무표정하게 앉아있던 북측의 신순희(83)씨는 작별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에 참았던 눈물을 와락 쏟았다.

신씨가 상봉한 남측 가족은 60여년전 헤어진 남편 성백섭(79)씨. 상봉 내내 남편이 서운하고 어색했던지 한마디도 없던 신씨는 남편에게 말을 하려고 애썼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딸은 주위 북측 관계자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어머니에게 "울지 말라"며 손사래를 쳐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북측 손자에 "할머니한테 전해, 많이 보고 싶다고"

0...석찬익(89)씨는 북측의 손자 광일(34)씨 손을 잡고 몸이 불편해 나오지 못한 할머니에게 애타는 그리움을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할머니한테 전해. 내가 큰 기대 가지고 왔는데 만나지 못해 얼마나 섭섭한지. 할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고. 많이 보고 싶다고."

북측 아들 하준(61)씨는 "아버지 휠체어를 밀어드리고 싶다"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휠체어를 밀면서 아버지를 배웅했다.

=북측 딸에게 "시집간 것도 못보고..."=

0...이동운(84)씨는 두살 때 헤어진 뒤 60여년만에 만난 북측 딸 경애(60)씨 손을 잡고는 끊임없이 울었다. 상봉행사에서 찍은 사진을 딸에게 건네면서 "미안하다"를 연발했다.

이씨는 딸에게 "이 사진을 어머니 산소에 가서 꼭 보여주라"고 당부하고 "네가 시집간 것도 못 본 나를 용서해라. 꼭 다시 만나자"면서 기약없는 이별을 아쉬워했다.

="오래 살아서 꼭 다시 만나자"=

0...이인호(88)씨는 버스에 오른 뒤 북측 동생들에게 "오래 살라우"라면서 울먹였다. 이씨는 특히 열여덟살 차이의 막내 여동생 명순(70)씨에게 "명순아, 꼭 오래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거듭 당부했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던 큰 오빠와 다시 이별하게 된 명순씨도 "오빠, 꼭 다시 만나자"면서 손수건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국군포로 형제 "알지? 웃으면서" 끝내 눈물=

0...6.25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국군포로 형 이쾌석(79)씨와 남측의 동생 정호(76)씨는 "우리 헤어지는 순간까지 울지 말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하지만 마지막 상봉이 끝나고 등을 돌리는 순간 끝내 눈시울을 적셨다.

형은 상봉 내내 동생에게 "알지? 웃으면서"라고 말했고, 동생은 유행가 "울지마~ 울긴 왜 울어"의 한 소절을 부르며 화답했다. 또 동생이 "형님 성질 죽이고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 잊지 않았지?"라고 말하자 형은 "알았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쾌석씨의 넷째 동생 정수(69)씨는 "통일 되면 나 칠순 잔치와 형님 팔순 잔치를 함께 합시다"며 "그때까지 꼭 건강하셔야 해요"라고 연신 당부했다.

버스에 오른 남측의 이정호씨는 버스가 출발하려는 순간 조카 이경숙(여.49)씨에게 "얘야 손 한번만 잡아보자. 아버지 잘 모셔라. 건강해라"라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90대 할머니, 작별 상봉때 정신 맑아져=

0...북측의 딸 문복길(73)씨를 만난 임만엽(91)씨는 딸에게 남측의 며느리가 마련해준 금반지를 끼워주며 상봉 내내 굵은 눈물을 흘렸다.

임씨는 1-2년전부터 정신이 흐릿해 상봉기간 내내 딸과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상봉날인 28일 갑자기 정신이 맑아졌다고 한다.

만나자마자 딸에게 주려고 했던 금반지를 상봉 마지막 날에야 건네준 임씨는 딸의 얼굴을 매만지며 "왜 이리 늙었니. 그 곱던 얼굴이 왜 이렇게 쪼글쪼글해졌니"라고 안타까워했다.

임씨는 또 옛날 기억이 한꺼번에 나는 듯 "우리 복길이가 옛날에 춤도 잘 추고 정말 고뫘는데"라며 "이제 봤으니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복길씨는 "저는 고래같은 집을 짓고 살고 있으니 안심해요, 엄마. 옛날 살던 집보다 지금 집이 더 좋아"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복길씨는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두 손을 흔들고 뛰면서 "어머니"라고 불렀고 임씨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버스 창가에 기대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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