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총리는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후 첫 주말인 지난 6일 오후에도 스코필드 박사가 안장된 현충원을 찾았으며, 과거에도 매년 스코필드 박사 기일이 되면 묘역을 찾았다.
정 총리는 서울대 총장 시절 서울대 수의대에서 강의했던 스코필드 박사를 기념해 ´스코필드 장학기금´을 만들어 직접 기금 조성에 참여했으며, 평소 스코필드 박사를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모임을 확장해 ´호랑이 스코필드 동우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기도 했다.
정 총리의 이같은 행보의 배경에는 스코필드 박사와의 특별 인연이 자리하고 있다.
캐나다 출신인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한국에 해방 이후 교육·의료 활동에 종사해 왔으며,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을 짓는 등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알리고 한국의 고아와 학생들을 위해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실천, 사후에 대한민국 문화훈장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고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정 국무총리와 스코필드 박사가 만났을 당시 정 총리는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려던 중학생이었고, 스코필드 박사는 백발이 성성한 70대였다.
정 총리는 1947년 2월(호적상 1946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 대에 급격히 가세가 기울어 결국 정 전 총장이 두 살 되던 해 그의 가족들은 서울행을 택했다.
정 총리가 9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고인이 됐고, 이후 전 총리 가족은 산동내를 전전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창경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초등학교 동기의 아버지인 이영소 전 서울대 교수가 학비를 내줘 경기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이후 이 전 교수의 소개로 스코필드 박사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스코필드 박사의 후원으로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고 그 결과 1966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정 총리는 자서전 등에서 "스코필드 박사는 일찍 아버지를 여읜 나에게 친아버지나 다름없었고 약자에게는 자애로움으로, 강자에게는 엄격함으로 대하라던 가르침은 철학적 신념으로 뿌리내렸다"고 했다.
그는 스코필드 박사를 "나를 만든 네분의 아버지 가운데 한 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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