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호한 사람”…세종시 소신 안굽혀
“나는 생각은 길게 하지만 행동에 옮기면 아주 빠르다. 나는 디사이시브(decisive·단호한)한 사람이다.”
29일 취임한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인들에게 자주 한다는 말이다. 정 총리의 업무 스타일을 짐작하게 하는 언급이다. 정 총리는 최근에도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세종시 문제를 굳이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제학자이자 서울대 총장 출신인 그의 경력으로도 ‘정운찬 스타일’을 점쳐볼 수 있다.
○ 야당 공세에도 소신 안 꺾은 고집
정 총리의 스타일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1차로 드러났다. 정 총리는 야당의 집요한 공세에 곤욕을 치르면서도 세종시 원안 수정에 대한 소신을 꺾지 않았다. 노회한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이었으면 “(총리 지명 직후 세종시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고개를 숙이며 쉽게 넘어갔을 법했지만 그는 끝까지 “학자적 소신”이라고 버텼다.
야당 의원들이 “총리가 되기 위해 학자 시절의 소신을 꺾은 것 아니냐”며 ‘변절 논란’을 제기하자 “저는 어린애가 아니다. 현실을 감안한 정책을 쓸 것임을 믿어 달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스타일에 비춰볼 때 정 총리가 앞으로 국정 의견 조율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는 관측이 나온다.
○ 국책사업 속도 조절되나
정 총리의 취임으로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책 사업의 속도 조절이 예상된다. 정 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재정 운영을) 좀 더 건전하고 신중하게 했으면 좋겠다”며 감세 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녹색성장과 신성장동력 사업에 대해서도 “총리가 되면 전체 정책을 다 살펴서 좀 무리가 있는 것은 고치자고 제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요 국책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 한국은행에서 잠시 근무한 바 있는 정 총리는 평소의 소신대로 한국은행의 독립성 강화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서는 정 총리의 취임으로 주요 경제 정책의 기조나 방향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학자로서의 경제철학과 정책 현장의 상황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지금까지 총리가 금융, 거시 정책 등에 직접 개입한 전례는 거의 없다.
교육 분야에선 현재 정부 정책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서울대 총장 시절 도입한 지역균형선발제나 정부가 추진하는 입학사정관제 확대는 모두 획일적인 입시제도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 자율성 확대 역시 정 총리가 서울대 총장 시절부터 강조하던 것이다.
○ 행정력과 정치력 보여줄까
정 총장은 이수성 총리에 이어 서울대 총장 출신으로는 14년 만에 총리에 올랐다. 학자나 대학 총장 출신 총리들은 대부분 취임 당시의 기대에 못 미치는 사례가 많았다. 정 총리 역시 행정 경험은 서울대 총장이 전부다. 그러나 그가 서울대 총장으로서 까다로운 학내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여론과 외부의 간섭을 막아내는 등 만만치 않은 행정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막판에 접기는 했지만 2007년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서려 했던 그의 정치력 역시 평범한 학자 출신과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의 행정 능력과 정치력은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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