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문제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당론에 미묘한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원안 처리’ 방침이라는 당론을 되풀이해오던 분위기가 차츰 바뀌며 원안 수정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민심의 변화에 주목하는 듯한 양상이다. 이 같은 기류는 세종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한 정운찬 신임 국무총리의 행보와도 맥이 닿아 있다.
○“당론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들은 “세종시법을 원안대로 처리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정 총리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법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가 당내에 퍼지면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장광근 사무총장은 29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세종시와 관련해) 그동안 진행돼온 것에 일정 부분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며 “충청권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인지, 변화가 필요하면 수정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정책을 상수(常數)로 보고 더 해주면 좋고 감(減)하면 죄악이라고 하는 논리는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소장인 진수희 의원도 “당론은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여론이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당론을 바꿀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거들었다. 여의도연구소가 27일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28.5%로 12일 조사(40.4%)에 비해 11.9%포인트 낮아졌다”며 분위기를 잡은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 주류 일각에서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과 정 총리의 소신이 일치했고 이를 여당이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세종시 처리 구상
세종시법은 세종시의 규모와 법적지위 등을 결정하는 ‘그릇’이 되는 법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에 따른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시가 세종시에 편입될 정부 부처 등 ‘내용물’을 결정하는 핵심 내용이다. 즉 세종시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더라도 ‘정부 부처 이전’ 문제와는 무관하다.
한나라당은 일단 세종시법을 원안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세종시 사업의 핵심으로 이전부처를 결정하는 정부 고시 문제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보겠다는 태도다. 세종시 기능을 보완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길 기다리겠다는 복안인 듯하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와 정부 일각에서는 세종시를 ‘교육과학수도’로 만드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부처 중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만 이전하고 국립대인 서울대의 이공계 학과를 내려 보내 과학비즈니스벨트 구상과 연계시키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기존 고시를 기준으로 9부2처2청을 내려 보낼 경우 6% 안팎에 불과한 개발 지역을 15% 이상으로 늘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기 대선과 총선 전략과도 연계
여권에서는 세종시 문제를 차기 대선 및 총선과 연계해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선과 총선의 판세를 결정짓는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이 두터워졌는데도 충청표를 의식해 세종시 문제를 다룰 경우 수도권 표를 잃을 수 있다”며 “냉정하게 세종시 문제를 풀어나가야 국익을 지키고 충청도민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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