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다 비상대책?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비상경제대책회의 10개월
매주 안건 만드느라 골머리
“대통령만 보인다” 지적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가 10개월째 이어지면서 안건의 긴장도가 다소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과거 같으면 각 부처에서 다뤘을 안건까지 대통령이 직접 챙기면서 장관들은 안 보이고 대통령만 보인다는 얘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8일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열린 제33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 보고된 안건은 ‘전기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이었다. 전기자동차 양산 시기를 2년 앞당긴다는 내용인데 이를 굳이 비상 기구 성격을 가진 회의체에서 다뤄야 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달 10일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추석 민생 및 생활물가 안정대책’을, 3일에는 수도권 공공아파트 3만 채 추가 공급 계획 등을 내놓았다. 8월에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는 △보금자리주택 공급 계획 △친서민 세제지원 방안 △쌀 소비 촉진 방안 등이 나왔다.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것에 대해선 정책에 힘이 실린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일상적인 정책은 해당 부처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올해 1월 이 대통령이 신년국정연설에서 ‘비상경제정부체제’를 선언하면서 도입한 한시 회의체다. 청와대 지하 벙커에 워룸(War Room·전시작전상황실)으로 불리는 비상경제상황실을 만들어 위기관리를 주도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자금난에 몰린 중소기업에 대한 채권 만기 연장, 기업 구조조정 전략 수립 등 기구의 위상에 걸맞은 위기 대응형 대책들을 만들어 냈고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회의체 운영 시한을 올해 말로 연장하면서 비상회의가 통상적인 회의가 돼 버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제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솔직히 이젠 ‘비상’이라는 이름을 붙일 안건이 별로 없다. 차라리 일반경제대책회의라고 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매주 목요일 열리는 회의의 의제를 마련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고 한다.

특히 대통령이 일반 현안을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직접 다루고 있어 각 부처 장관들의 재량과 자율이 줄어들고 대통령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것에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비상경제대책회의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일부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것과 개별 부처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며 “올해 재정 조기집행도 대통령이 독려하지 않았으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8일 회의에서 “전 세계 어디에도 매주 대통령이 직접 업계 관계자들과 만나서 위기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 경제위기 극복의 모범국가로 우리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고 자평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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