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MB정부의 IT지수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보기술(IT) 관련 업계와 학계에는 “IT 연구에 갈 정부 예산이 모두 4대강 사업에 들어가 지원할 돈이 없다더라”는 말이 진실처럼 떠돌았다. 물론 사실이 아니겠지만 이 정부에 대한 IT계 사람들의 불만과 그 이유가 농축된 말이었다. 당장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그리고 대통령의 전공인) 건설과 토목사업은 중시하면서 국가의 장래와 관련된 IT나 과학기술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작은 정부’를 표방하면서 하필 없앤 것이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였기에 소문은 더욱 그럴듯했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IT가 일자리를 줄였다”고 한 말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한국 경제의 한 주축이던 IT쪽 사람들의 마음은 이 정부에서 영 떠나가는 듯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부는 IT를 향해 열심히 구애(求愛)를 하고 있다. IT 관할 부서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나뉜 대신 청와대에 IT 특별보좌관을 두어 총괄하게 했다. 지난달에는 ‘IT코리아 미래전략’이라는 종합 청사진도 발표했다. IT융합, 소프트웨어, 주력IT, 차세대 방송통신, 인터넷 등 5대 핵심 전략분야를 선정해 올해부터 2013년까지 총 189조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최근 IT 중소·벤처기업인들과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앞으로 분기별로 정기 만남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소프트웨어 코리아’란 말이 나올 정도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속되는 정부의 관심에 IT쪽 사람들의 불만은 조금씩 기대로 바뀌고 있다.

IT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자동차 조선 건설 에너지 등 모든 전통산업이 IT를 만나 재탄생하고 있다. IT를 빼놓고 제조업의 발전과 혁신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처럼 IT는 모든 산업의 인프라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7%,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주요 산업이기도 하다. IT업계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위해서 IT를 중시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여건은 여전히 좋지 않다. 정부가 IT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건 좋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우선 인재들이 떠나고 있다. 고급 엔지니어들이 IT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지금 IT업계는 1970, 80년대에 유입된 우수 인재들로 버티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는 IT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데다 소프트웨어나 IT서비스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환경과 관련이 있다.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상품이나 지적재산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기업 생태계가 문제다.

정부의 IT전략이 립서비스에 그치는 건 아닌지 의심도 남아 있다. 189조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중 175조2000억 원은 슬쩍 민간부문으로 떠넘겼다. ‘IT코리아 미래전략’도 사실 대통령 선거공약 이후 하나둘씩 내놓은 것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묶어 발표한 데 불과하다.

설사 그렇더라도 IT융합이나 그린IT를 강조하는 등 방향은 잘 잡았다. 이제부터 정부가 보여주는 노력과 실행에 평가가 달렸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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