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日王 방한? 고령에 일정문제도…” 비켜가

  • 입력 2009년 10월 10일 02시 58분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왼쪽)가 9일 청와대에서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북핵문제 해결을 비롯해 내년 11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 등 양국 간 관심사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안철민 기자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왼쪽)가 9일 청와대에서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북핵문제 해결을 비롯해 내년 11월 한국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 등 양국 간 관심사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안철민 기자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9일 청와대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는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가깝고도 가까운 한일관계로의 발전을 강조했다. 다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하토야마 총리는 취임 후 3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일본 내 현실적 제약 때문인지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의지를 밝히는 데 머물렀다.》

“6자회담 틀내서 제재-대화 투트랙 지속
일본인 납치문제도 그랜드 바겐에 포함”

두 정상은 북핵 문제 해법에 거의 이견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특히 하토야마 총리는 이 대통령이 제안한 ‘그랜드 바겐’ 구상에 대해 “아주 정확하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지지한 뒤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해 일괄적, 포괄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 뜻이 나타나지 않는 한 경제협력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랜드 바겐 구상은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 등 ‘핵심 부분’을 포기하면 북한에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지원을 한다는 일괄 타결안이다.

두 정상은 이를 위한 틀로써 6자회담의 유용성도 다시 강조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북-미 회담을 지지한다. 그런데 지지하기 위한 전제로서 6자회담으로 꼭 유도해 달라’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들여 핵 폐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다는 ‘투 트랙 어프로치(이중접근법)’를 지속적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두 정상은 일본인 납치문제도 포괄적 패키지에 포함돼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 대통령이 납치 문제도 당연히 포괄적 패키지에 포함돼 있다고 했다. 고맙다”고 밝혔다. 납치 문제는 그랜드 바겐에 대한 로드맵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데다 북한이 꺼리는 문제라는 점에서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랜드 바겐 자체가 북핵의 핵심 부분 처리와 북한 체제 안전 및 국제 지원의 문제를 다루는 만큼 납치 문제는 후순위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북핵 공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이 지금 미국 중국 일본뿐만 아니고 한국을, 이른바 분리 대응을 해서 자기 페이스로 상황을 이끌어 가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더욱 공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중국도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고 이를 전제로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지원을 한다는 방향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러시아도 일괄 타결 방안에 동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토야마 “日국민 이해얻는데 시간 걸려”
재일동포 참정권엔 “적극 결론도출 희망”

하토야마 총리는 “저희 새 정권은 역사를 직시하고 해결해갈 용기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과거사 인식은 그간 민주당 정권이 강조해온 전향적인 태도를 재확인한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과거사에 진보적 태도를 표명해온 민주당 정부가 과거사 문제 해결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거사 해결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전후 청산을 하지 못해 발목을 잡혔던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 ‘보통 국가(normal state)’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가장 진전된 사과를 한 것으로 평가되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거론하며 “무라야마 담화의 뜻과 마음을 정부의 한 사람 한 사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한 생각이라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문제에 대해선 적극적인 결론 도출을 희망한다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일왕 방한 문제에 대해서도 고령과 일정 문제를 언급하며 비켜갔다.

또 다른 당국자는 “민주당 정부가 현재로선 출범 직후여서 그런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며 “민주당이 내년 7월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고 장기집권에 자신감을 가진다면 그때부터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만큼 처음부터 성급하게 과거사 문제를 꺼내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하토야마 총리가 과거 다른 총리처럼 일본 외무성이 준비해온 문안을 읽는 수준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신념을 바탕으로 과거사에 대한 언급을 한다는 점은 차별화된 모습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수석은 “지금 당장 무엇이 될 것처럼 말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토로한 것은 오히려 더 신뢰를 주는 태도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두 정상은 △중소기업 간 협력 등 민간 경제협력 강화 △한일 그린 파트너십(Green Partnership) 구상 구체화 방안 협의 △내년 한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일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협력 △동아시아지역 협력 확대 등에도 합의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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