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건설을 원안대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해 온 여권 지도부의 말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9일 약속이나 한 듯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서 원안 변경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이날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세종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어 고심하고 있다”며 “무엇이 충청권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를 헤아려 (세종시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국가가 세종시에 투자하기로 한 예산은 축소되지 않을 것이며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사진)도 이날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정부에서 (세종시에 대한) 어떤 의견이 나온다면 그것이 적합한지, 세종시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인지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록 “한나라당은 (세종시 원안 고수) 당론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정부가 원안을 수정한다면 검토해볼 수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세종시 건설 원안을 변경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이날 안 원내대표의 발언이 처음이다. 안 원내대표는 불과 1주 전인 1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종시에 대한 당론 변경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원안고수) 당론이 변경된 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시 그는 당내의 원안 변경 주장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소신이 (당론과) 다른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여권이 세종시 원안 변경 추진을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청와대와 정부가 먼저 세종시 원안 변경을 주도하면 당이 이를 뒷받침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의 움직임도 살펴야 하는 당이 전면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논리에서다.
우선 원안 변경을 찬성하는 여론이 확산돼 자연스레 원안 변경 방안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5일 “세종시 문제에 대한 여론의 빠른 변화가 느껴진다”며 “충청지역이나 국민 여론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 전에 우리가 굳이 당론을 바꿀 필요는 없지만 큰 변화가 오면 그때는 민심을 수렴해 적절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장인 진수희 의원도 “당론이 고정불변인 것은 아니다”라며 “여론 변화가 당론을 바꿀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