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검푸른 파도가 높게 일렁이는 서해 공해상. 경기 평택시 오산 공군기지를 이륙해 1시간여 동안 망망대해 상공을 날던 미 해군의 C-2 수송기 내 승무원들이 힘껏 외쳤다. 착륙 충격에 대비하라는 신호였다. 비좁고 어두컴컴한 기내에 잠시 긴장이 감돌았다. 안전벨트와 구명조끼, 헬멧을 다시 점검했다.
이어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착륙한 기체가 활주로의 강철로프에 걸려 급정거하자 몸이 앞으로 튕겨나갈 듯했다. 잠시 뒤 수송기 출입문이 열리자 미 해군 관계자들이 달려와 “세계 최강의 항공모함 탑승을 환영한다”며 반갑게 맞았다.
미 해군 7함대 예하 제5항모강습단 소속 조지워싱턴(CVN-73)은 ‘거대한 해상요새’답게 방대한 규모로 낯선 방문객을 압도했다. 조지워싱턴은 미 해군이 보유한 10척의 니미츠급 핵추진 항모 중 여섯 번째로 건조됐다. 1992년 취역한 뒤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 투입됐고 지난해 미7함대 모항인 일본 요코스카(橫須賀)에 배치됐다.
조지워싱턴은 13일부터 일주일간 서해상에서 한국 해군과 실시 중인 연합훈련의 현장을 동아일보에 공개했다. 이번 훈련에는 한국의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7600t)이 대형 태극기를 내걸고 참여해 조지워싱턴을 근접 호위했다.
이번 연합훈련은 최근 북한이 동해에 단거리미사일 5발을 발사한 데 이어 서해안에서도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열렸다. 동행한 한국군 관계자는 “이번 훈련은 유사시 공기부양정이나 잠수정을 타고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기습 침투하는 북한 특수부대를 한미 연합전력으로 저지, 격퇴하는 훈련으로 미 항모가 참가한 것은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축구장 3배 크기의 비행갑판에선 슈퍼호닛(FA-18EF) 전투기와 프라울러(EA-6B) 전자전(電子戰)기, 호크아이(E-2C) 경보기 등 최신예 함재기들이 함상요원들의 수신호에 맞춰 쉴 새 없이 뜨고 내렸다. 갑판의 사출(射出)장치는 30초마다 수십 t의 함재기를 순식간에 시속 300km로 새총처럼 쏘아 올렸다. 그때마다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충격파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시뻘건 화염을 내뿜으며 최고출력으로 이륙한 함재기들은 편대를 지어 항모 주변 상공을 선회하면서 위용을 과시했다. 엄청난 소음과 기름 냄새, 열기로 가득한 갑판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고 방풍안경, 마스크를 쓴 승무원들이 수신호로 의사소통을 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미군 관계자는 “항모의 비행갑판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복잡한 곳으로 단 1초도 방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지워싱턴을 포함해 이지스 순양함 3척과 구축함 7척, 핵잠수함, 보급함 등 10여 척으로 이뤄진 항모강습단은 웬만한 국가의 전체 군사력을 능가한다. 1개 항모강습단의 자산 규모는 한국군 1년 예산(약 28조5000억 원)과 맞먹는다.
갑판 관람을 끝낸 뒤 항모 내부의 미로 같은 좁은 복도와 철제계단을 한참 지나 심장부인 전투지휘센터(CDC)에 도착했다. CDC는 첨단 레이더장비와 지휘통제시스템이 집결된 항모의 핵심시설로 출입통제구역이지만 이날 동아일보에 내부를 전격 공개했다.
이곳에선 항모강습단의 작전반경(약 1000km) 내 육해공에서 수집된 모든 군사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해 즉각적인 대처를 지시한다. CDC 요원들은 대형 모니터 여러 대로 미 정찰위성과 조기경보기, 이지스 레이더 등이 포착한 한반도 주변 상공 및 해상의 모든 항공기와 선박의 종류, 이동 방향을 실시간으로 손금 보듯 추적하고 있었다.
제5항모강습단장 케빈 도너건 준장은 “(미사일 발사나 항공기 이동 등) 북한의 군사동향도 확실히 감시 추적할 수 있으며 한국 해군과 철저한 공조 태세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너건 준장은 최근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발사도 포착했느냐고 묻자 “군사기밀이라 자세히 밝힐 수 없다”면서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정확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