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끈’ 청와대… ‘발뺀’ 백악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0일 03시 00분


‘MB 평양초청 발언’ 해프닝… 한미 소통 문제없나
韓 강력 항의에 美 신속 해명
‘그랜드바겐’ 소동 이어 삐걱
“문제의 발언 한 당국자 징계
게이츠 방한 수행단서 빠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초청했다는 미국 국방부 당국자의 발언 파문은 18일 백악관이 직접 나서면서 봉합되는 모양새다. 당초 미 국방부에서 수정 브리핑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백악관이 직접 나서 해명한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파문이 확산되면 청와대와 백악관의 불편한 관계가 고조될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판단도 작용했다. 여기엔 한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도 있었다.

하지만 남북정상이 연관된 중요한 외교사안을 당사자도 아닌 미 국방부 관리가 발설했다는 점에서 여진은 여전히 있다. 청와대가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 적절하지 않은 장소에서 남북정상회담 얘기를 꺼냈다는 것은 한국 정부로서 당혹스러운 일이다. 백악관이 신속하게 나서 “오해(misunderstanding)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발 비켜섰지만 이번 일로 두 나라에 잠재한 미묘한 불협화음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지난달 21일 이 대통령의 북핵 폐기 등 ‘그랜드바겐(일괄타결)’ 제안에 대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의 ‘금시초문’ 발언을 이번 일과 연결짓기도 한다. 그 직후 이 대통령은 캠벨 차관보를 겨냥해 “아무개가 모른다고 하면 어떠냐”고 했고, 캠벨 차관보는 동아시아 순방 때 한국을 빼고 일본과 중국을 방문했다. 그때처럼 한미관계가 삐걱대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백악관 기류가 신속한 해명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이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을 야기한 미 국방부 고위당국자의 당초 발언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이 대통령 평양 초청 얘기가 나온 것은 14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한국 일본 슬로바키아 순방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였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식으로 초청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지만 “김 위원장이 이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다”고 국방부 당국자는 말했다. 단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려운 중대 발언이었다.

한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도 주목할 점이다. 청와대는 14일 미 국방부 당국자의 사전 브리핑 내용을 전달받자 곧바로 미국 측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발언 정정을 요구했다. 청와대 참모는 “미국에서 유감 표명을 해왔다”며 “미국 행정부 내 의사소통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북한 발언의 한마디에 함몰되면 결국 그쪽 플레이에 말려드는 격”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16일 오전 기자들과 콘퍼런스콜(전화회의)을 하기로 했다가 회의 1시간 전에 취소하는 등 청와대의 강경 기류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대신 미국 측은 청와대 요구에 공보라인을 통한 적절한 조치를 약속했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평양 초청 발언을 한 해당 당국자가 이번 게이츠 국방장관의 한국 방문 수행단에 포함됐었지만 최종 명단에서는 빠졌다”며 “일종의 징계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는 “좋지 않은 신호”라며 경계하는 눈치다. 일단 사태가 수습되기는 했지만 한미 관계에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미국이 마지못해 유감을 표명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의 불씨가 완전히 가라앉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지적이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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