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親서민 복지정책이라도 ‘예산 누수’는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0일 03시 00분


정부가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 중인 희망근로 프로젝트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표본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재산 1억3500만 원 이하인 사람을 우선 선발하는 이 사업의 취지가 무색하게, 3억 원 이상 재산을 가진 사람이 지원 대상자의 15.3%였다. 어제 동아일보는 시가(時價) 5억8000만 원인 아파트에 사는 서울 강남권의 중산층 주부까지 희망근로 대상자에 포함된 사례를 보도했다.

희망근로 프로젝트는 월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인 ‘차(次)상위계층’에 공공부문 일자리를 제공하고 현금과 쿠폰을 합쳐 매월 83만 원씩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올해 대상은 25만 가구로 관련 예산은 1조70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재산 등 자격기준을 제대로 따지지 않아 ‘중산층의 용돈벌이’로 변질하거나 이름만 걸어놓고 돈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노동연구원은 이 프로젝트 참여자 중 당초 주요 대상으로 삼았던 차상위계층의 비율이 18.5%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생활 안정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다. 그러나 아무리 명분이 좋은 정책이라도 공무원이나 수혜자가 예산을 ‘눈먼 돈’으로 치부한다면 진정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야 할 돈을 가로채는 행위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은 가계나 기업과 달리 돈을 쓰는 사람과 부담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철저히 감시하지 않으면 곳곳에서 예산 누수(漏水)의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로 재정의 역할이 커지고 친(親)서민 복지정책을 펴면서 학자금 지원,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자금 지원 예산이 크게 늘어났다. 그렇지만 엉뚱한 곳으로 돈이 줄줄 새면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홀몸노인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진짜 약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급증하는 재정적자는 앞으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다음 세대의 부담을 늘릴 불안요인이다. 국가채무 중에도 조세 등 실질적 국민부담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가 매년 크게 늘어나 내년에 200조 원에 육박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정부는 경기부양 및 친서민 정책 추진과정에서 예산 낭비가 없는지 전반적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치단체에서 자격 기준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선심 쓰듯 돈을 내주는 분위기마저 드러나고 있다. 지자체의 선심성 예산 집행은 공명선거 차원에서도 단호하게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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