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주한미군 일부, 수년내 중동 배치 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6일 03시 00분


성조지 “멀린 합참의장 밝혀”

마이클 멀린 미국 합참의장(해군 대장·사진)이 앞으로 몇 년 안에 주한미군 병력의 일부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제41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 참석차 방한한 멀린 의장은 22일 서울 용산구 한미연합사령부에서 미군 장병 수백 명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 배치된 더 많은 미군 장병이 가족과 함께 장기 주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앞으로 몇 년 안에(in coming years) 주한미군 병력을 중동지역으로 배치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미군 전문지 ‘성조’가 25일 보도했다. 다만 멀린 의장은 이동 배치될 주한미군의 규모, 대체전력의 투입 여부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미군 고위 관계자가 주한미군 병력의 중동지역 배치 가능성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는 2006년 초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고정 배치되지 않고 한국 정부의 동의 아래 다른 분쟁지역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이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따른 것으로, 이르면 내년부터 본격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주한미군 일부 병력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 배치할 경우 전력공백을 막기 위해 보완전력으로 함정과 전투기 등 해군 및 공군 전력을 한국에 추가 배치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미국이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계기로 주한미군을 한국군을 지원하는 공군력 위주로 재편하면서 지상군 병력을 점차 줄여 다른 지역에 배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멀린 의장은 간담회에서 “(주한미군의 이동 배치 문제는) 우리가 매우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사안”이라며 “현재까지 한 가지 또는 다른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진 않았다”고 말했다.

美, 아프간 전황 악화되자 ‘병력 빼내기’ 검토
주한미군만큼 숙련된 지상병력 거의 없어
군 안팎 “한국의 파병여부 따라 수위 조절할 것”

과거 주한미군 장병들은 한국에서 1년간 주둔했지만 경기 평택 미군기지에 각종 기반시설들이 확충되면서 미 국방부는 지난해 말부터 전체 주한미군의 절반인 1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가족과 함께 2년이나 3년간 주둔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멀린 의장은 “많은 한국인이 주한미군 2만8500여 명 가운데 일부를 아프간이나 이라크 등으로 배치하면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비태세가 취약해지고 한미동맹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그런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미군 수뇌부가 주한미군의 분쟁지역 이동 배치를 검토 중이라고 언급한 것은 무엇보다 아프간의 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대테러전쟁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전역에서 탈레반 반군의 공세가 격화되면서 미군 희생자가 급증하는 등 현지 전황은 갈수록 미국 측에 불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은 최대 4만 명의 병력 증파를 미 행정부에 요청했고, 멀린 의장도 아프간 병력 증파를 적극 지지해 왔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의 찬반 논란이 거세지면서 병력 증파 방안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 당국으로선 전 세계에 배치된 기존 미군 병력 중 일부를 아프간에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군 고위 소식통은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 가운데 주한미군만큼 숙련된 대규모 지상병력은 거의 없다”며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을 최적의 아프간 파병 부대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주한미군의 아파치 공격헬기 1개 대대의 아프간 차출에 이어 조만간 미2사단의 지상병력 차출 논의도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앞으로 한국의 아프간 파병 여부에 따라 미국이 주한미군의 아프간 이동 배치 규모와 시기를 고려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최근 방한에서 “한국에 구체적인 아프간 지원을 요청한 바 없으며 지원 여부는 한국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면서도 “동맹국들의 아프간에 대한 각종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국의 자발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군의 핵심 소식통은 “한국이 파병을 포함해 ‘전략적 동맹’에 걸맞은 아프간 지원에 나설 경우 미국도 주한미군의 아프간 이동 배치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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