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출범한 이래 북한은 장거리로켓 발사와 핵실험 등 도발행위를 하다 7월부터는 대외 유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북한과의 실무접촉에 들어갔지만 아직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간 정책공조, 그리고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한미안보연구회(공동회장 김재창 예비역 대장, 존 틸럴리 전 한미연합사령관)는 29일 서울 캐피탈호텔에서 ‘한미 양국의 포괄적인 안보협력’을 주제로 연례국제회의를 열어 한미 간 대북정책 공조 및 6자회담 참가국 간 협조체제를 점검하고 나름의 해법을 모색했다. 마크 토콜라 주한 미국 부대사는 이날 정책연설을 통해 “굳건한 한미동맹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됐다”며 “미국은 한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평화통일과 비핵화가 이뤄지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6자회담이라는 수단이야말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는 최적의 방안으로 생각한다”며 “북한이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를 선택한다면 미국과 대화의 길이 열려있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와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미국 헤리티지재단, 한미우호협회, 한국해양전략연구소, 반도에어에이전시가 공동 주최한 이번 회의는 30일까지 이어진다.》
1분과 주제 한반도 둘러싼 美-中의 역할과 위상 한국, 美中관계 안정적일때 양국과 좋은 관계 가능
패널들은 앞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미국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로 남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앤드루 스코벨 텍사스A&M대 교수는 “중국은 자국의 안정을 해치는 것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며 “그런 중국에 한반도는 굉장히 중요하고 한반도의 불안정은 중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은 2010년 이후 강력한 한반도 외부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며 “중국은 주변국과 한국 간의 건설적 중개자 역할을 맡고 한국도 중국을 호의적이고 중요한 외부세력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이비드 강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강력하고 부유한 중국의 등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현재의 국제규범 속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하면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국가가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이를 추종하는 국가들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중국이 핵심국가로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은 주변국으로부터 리더라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특히 한미, 한중 관계에 대해 “미중 관계가 안정적일 때 한국은 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지만 한국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두 국가가 갈등관계에 들어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 엔디콧 우송대 총장은 최근 남북관계가 긴장국면에서 화해국면으로 극적으로 바뀐 점에 주목하며 “북한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장거리미사일 발사, 미국 여기자 2명 억류 등 광란의 움직임(frantic activity)을 보이는 동안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대북정책에서 단합된 공조 체제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기수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패널들의 결론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인데, 원천기술을 보유하지 못할 경우 중국 경제도 언젠가는 수익률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2분과 주제 한미 양국의 새로운 대북정책 전망 北, 비핵화 과정서 한국역할 축소땐 北에 도움안돼
한국과 미국이 제시한 새로운 대북정책의 성패에 대한 패널들의 전망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 북한의 태도 변화 가능성이 높지 않아 새로운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판단인 셈이다.
박태우 대만 국립정치대 초빙교수는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하는 ‘그랜드 바겐’을 받아들여 자본주의 경제로 통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나머지 원조를 모두 북한의 비핵화 여부에 맞추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며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축소하려 하면 북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워드 올슨 미국 해군대학원 교수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새로 출범하면서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고려했지만 북한이 잇단 도발행위로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기간에 대북정책이 변화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북한의 잇단 도발 때문에 실제 정책으로 실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냉전체제의 붕괴로 미국의 안보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냉전이 지속되고 있다”며 미국의 급격한 대북정책 변화가 한국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한편 올슨 교수는 “남북한과 미국 학자들이 만나 의견을 교환하는 가칭 ‘코리아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주 만나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만약 코리아 프로그램이 오바마 행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면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미 정상회담을 갖는다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3분과 주제 오바마 정부에서의 한미 안보동맹 韓美합의 ‘확장 억지력’ 실천 워킹그룹 즉각 가동을
패널들은 이명박 정부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아래에서 한미동맹은 상호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 강화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담아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들이 나왔다.
브루스 벡톨 해병지휘참모대 교수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강력한 동맹국으로 한국의 군사력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한국이 군사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완전한 자위능력과 독자적 전작권을 갖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른 방향이지만 2012년까지 이를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작권 전환으로 통합된 전쟁수행본부가 사라지면 한미 간 협력체계가 축소되고 유사시 한국 민간인을 포함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군이 단독으로 북한군과 전쟁을 치를 능력이 있다는 오해를 초래해 대규모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미국 내 지지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멜 구르토브 포틀랜드주립대 교수는 “한미 간에 북한문제와 주한미군 재배치, 미사일방어(MD), 한국군 해외파병, 방위비 분담 등에 대해 다소 이견이 있지만 한미동맹은 공고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시대가 변하면 동맹도 변하는데, 미국의 핵 억지력이나 주한미군 주둔으로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기보다는 다자주의 안보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는 북한이 최근 유화 메시지를 보내는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조건부 6자회담 복귀를 통보한 것은 6자회담 복귀 조건으로 2000만 달러 이상의 경제지원을 받기 위한 것”이라며 “유엔의 경제 제재와 주변국 간 연합 움직임을 분쇄해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한미 간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양국 정상이 약속한 ‘확장된 억지력’을 실천하기 위한 워킹그룹을 즉각 가동하고 △북한의 급변사태 대응책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널들 “北 6자회담 복귀-비핵화가 문제해결 출발점” ▼ 패널들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이른바 ‘그랜드 바겐’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한반도에서 평화공존과 번영의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비핵화 약속은 모든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에드워드 올슨 미국해군대학원 교수는 “6자회담에서 성과를 만들어낸다면 미국과 북한 사이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반도의 휴전협정이 영구적 평화협정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강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북한은 미국이 인도처럼 핵무기 몇 개만 가져도 용인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으나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태우 대만 국립정치대 초빙교수는 “북한이 비핵화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단합된 목소리에 따르지 않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6자회담 참가국 전부가 같은 생각을 가진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앤드루 스코벨 텍사스A&M대 교수는 “중국은 6자회담을 주변 강대국들을 컨트롤하는 하나의 관리 메커니즘으로 생각한다”며 “중국으로서는 회담 자체의 결렬이 아니라면 지연되든 어떻든 모든 것을 성공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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