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헌법재판소가 신문법과 방송법에 대해 ‘국회 표결 과정에서 야당의원들의 심의 표결권한이 침해됐지만, 가결 선포된 법안은 유효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1996년 12월 당시 신한국당의 노동관계법 기습 통과 때의 판단과 비슷하다. 그러나 두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도 많다.
1996년 12월 26일 오전 6시 집권여당이자 다수당이었던 신한국당은 야당에 소집 통보 없이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열어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전격 처리했다. 처리 시간은 7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야당 의원 124명은 “국회의원의 표결권이 침해당했고 법안 통과도 무효다”라며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당시 재판관 9명 중 3명은 “국회의원이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며 판단 자체를 유보했다. 나머지 6명은 모두 “국회의장이 개의 일시를 통보하지 않은 등 위법한 점이 많아 표결권을 침해했음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안 가결이 무효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결국 9명 중 3명만 법안 통과가 무효라고 판단했고, 과반수가 안 돼 “가결 선포 행위는 유효하다”고 결론이 났다.
이번 미디어법에 대한 헌재 결정도 큰 틀에서는 노동관계법 사건과 유사하다. 그러나 재판관별 판단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신문법과 방송법 표결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재판관은 9명 중 각각 7명과 6명으로 과반수였다. 그러나 가결선포의 효력에 대해선 의견이 정확히 세 갈래로 나뉘었다.
재판관 3명은 “일부 절차상 하자가 가결된 법안을 취소하거나 무효로 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아 가결 선포는 유효하다”고 밝혔다. 다른 3명은 헌재가 가결 선포의 유·무효를 따질 수 없고 국회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나머지 3명은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는 만큼 가결 선포 자체도 무효라는 의견이다.
2005년 12월에는 야당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여당의 사학법 개정안 강행 처리와 관련해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기각된 사례도 있다. 당시 헌재는 “의사진행이 의원들의 심의 표결권을 침해할 정도는 아니었고 국회 회의록상 대리투표 의혹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한나라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민주 ‘의원직 사퇴’ 3인 거취는… 당초 “법 무효때 사퇴 철회” 당 “헌재 결정 떠나 복귀를” 장세환도 “사퇴”… 지도부 곤혹▼
헌법재판소가 신문법, 방송법에 대한 무효 청구를 기각함에 따라 미디어관계법 처리에 반발해 의원직 사퇴를 선언한 민주당 의원 3명의 거취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세균 대표와 천정배 최문순 의원은 7월 22일 미디어법이 처리되자 이에 항의하며 국회의장에게 사퇴서를 제출했다. 세 의원은 그동안 ‘미디어법 무효’가 실현되기 전까지는 사퇴의사를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이날 헌재의 결정으로는 복귀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의총을 열어 “이명박 정권의 투쟁전선에 일당백의 용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며 사퇴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에 앞서 문희상 국회부의장, 김성순 의원 등 당내 60세 이상 의원들의 모임인 ‘민주시니어’도 긴급 회동을 갖고 헌재의 결정과 관계없이 사퇴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며 복귀 명분 쌓기에 힘을 보탰다. 당 지도부는 전날 최 의원을 만나 사퇴 철회를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정 대표는 복귀하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해가고 있다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그러나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장세환 의원이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목을 비틀었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자 당 지도부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의총에서 박주선 최고위원 등이 사퇴 철회 촉구 결의안의 필요성을 강조하자 강창일 의원은 “같은 상황을 놓고 동료가 (새로이) 사퇴하는 마당에 다른 의원들의 복귀를 거론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박병석 의원은 “오늘 새 ‘돌발변수’가 생긴 만큼 비공개로 논의하자”며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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