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자성론 속 계파간 책임론… 野, 세종시-4대강 공세 채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 10·28 재·보선 이후

《10월 재·보궐선거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은 수도권 3곳 패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진영의 틈새가 벌어지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대여 공세를 강화할 태세다.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선거 결과에 대해 “정부가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일자리 창출과 서민경제 살리기를 위해 더 분발하고 매진하라는 채찍과 격려를 보낸 것”이라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더욱 열심히 일하라는 국민의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 0패’ 끊었지만…
최근 7년 재·보선 與당선 전무
한나라 2곳 승리깵 접전지선 져


재·보궐선거가 여당에 가시밭이라는 정치권의 속설은 10·28 재·보선에서도 통했다. 여당 견제 심리가 재·보선 표심(票心)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강원 강릉과 경남 양산 등 2곳에서 승리했지만 수도권 2곳과 충북 4개군을 합친 중부권 3곳에서 민주당에 졌다. 전통적인 당 우세 지역에서 승리했을 뿐 접전지역에선 완패했다. 한나라당이 ‘영패’를 면했다고 자위하기 어려운 이유다.

여당이 재·보선에서 야당에 승리한 것은 김대중 정부 출범 1년여 뒤인 1999년 3월 재·보선 때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국민회의와 자민련 공동정권은 서울 구로와 경기 시흥에서 연합공천 후보를 당선시켰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02년 8월 전국 13곳에서 펼쳐진 재·보선에서 여당은 광주와 전북 군산 등 호남 2곳에서만 의석을 건졌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처음 실시된 2003년 4월 재·보선부터 여당의 완패 행진이 시작됐다. 이후 2009년 4월까지 모두 7차례 실시된 재·보선에서 여당은 내리 ‘영패’를 기록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인 한나라당을 이끌었던 박근혜 당시 대표는 재·보선 승리를 싹쓸이함으로써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이번 재·보선에서 조심스럽게 여당 패배의 징크스를 깨고자 했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당 지도부는 이번 선거에서 최소한 3 대 2로 민주당을 앞설 경우 정국 주도권을 확실히 쥘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기대를 접어야 했다.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은 “‘재·보선에는 야당에 보이지 않는 몇 %라는 게 있다’는 정치권의 속설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한나라당
“여권 오만에 민심 이반”
민본21등 당쇄신 요구
“세종시 이견표출도 영향”
‘+알파’ 발언 친박 겨냥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재·보선 결과에 대한 자성론이 쏟아졌다.

개혁성향 초선모임인 ‘민본21’의 간사인 권영진 의원은 “이번 재·보선에서 수도권과 충청에서 완패했다”며 “청와대와 정부의 일부 오만한 행태가 드러나 밖의 민심과 안의 민심이 달랐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몽준 대표가 당 변화와 쇄신의 중심에 서야 하며, 그래야 미래도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민본21’은 별도의 성명을 내고 “지도부는 당 쇄신 프로그램과 정치 일정을 조속히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충남 출신인 정진석 의원은 “(재·보선 기간에 불거진) 세종시 문제는 야당에는 호재였고 우리에게는 악재였다”며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급조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몽준 대표는 “당 쇄신에 대표가 서라는 것은 전당대회 개최의 필요성을 말하는데 이는 상식적인 것”이라며 “전대를 하자고 하면 하는 것이고, 안 하자고 하면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당내 갈등 기류도 엿보였다. 친이계 장광근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PBC 라디오 방송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해 당내 이견들이 선거 과정에서 표출된 건 사실”이라며 “여당의 여러 가지 혼란상황이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선거기간 박근혜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알파’ 발언이 세종시 문제의 영향권에 있는 충북 4개 군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뉘앙스였다. 다만 장 총장은 “박 전 대표가 시기와 상관없이 원칙론을 펴왔기 때문에 선거 결과와 연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당 지도부 사이에서도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났다. 정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 결과를 겸손하게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친박계 허태열 최고위원은 “정 대표가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한나라당에 격려와 채찍을 줬다’고 말했는데 채찍 부분에 좀 더 성심성의를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민주당
“충청의 민심 반영된 것”
정치쟁점 주도권 잡기
“잘해서 이긴것 아니다”
노선정립 필요 지적도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 결과를 사실상 ‘압승’이라고 자평했다. 수도권 2곳과 충북을 석권한 데 이어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남 양산에서 집권 여당의 대표였던 ‘거물’을 상대로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보선 승기를 동력 삼아 민주당은 대여 공세의 수위를 한층 높인다는 전략이다. 특히 여권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세종시와 4대강 사업을 집중 공략하겠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29일 고위정책회의에서 “수도권 승리는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는 뜻이며, 충북에서의 승리는 세종시와 혁신도시에 대한 충청도민의 염원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라며 “4대강 사업에 대한 국정조사와 세종시 원안 추진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특히 세종시와 관련해 조만간 9부2처2청의 이전 기관을 법제화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또 정운찬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제출 문제를 다른 야당과 협의할 예정이다.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서는 특별검사 도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 내부적으로는 친노(친노무현) 세력과의 통합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열세지역인 영남에서 민주당 간판으로도 선전할 수 있음이 입증됨에 따라 민주당 중심의 통합 논의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서둘러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들도 나오고 있다. 재·보선 결과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론이다.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은 이날 YTN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잘해서 승리했다기보다 국민이 유일한 교섭단체인 민주당에 ‘제대로 국정을 견제하라’고 힘을 실어준 것”이라며 “선거 결과에 방심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도 “여권과 진정한 친(親)서민 정책을 놓고 경쟁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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