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옛 소련에 ‘서울올림픽 막아달라’ 요청했었다

  • 동아닷컴
  • 입력 2009년 10월 31일 03시 00분


황장엽-소련 당서기 대화록
‘한-소 수교’ 반대하다 좌절되자 독자 핵개발 위협

제24회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2년 4개월 전인 1986년 5월 16일 황장엽 당시 북한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사진)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오른팔 격인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 당서기를 만나 남한의 올림픽 단독 개최를 막아달라고 요구했지만 옛 소련의 반응은 싸늘했다.

황 비서는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인 1988년 10월 당국제정책위원장으로 승진한 야코블레프와 다시 만나 옛 소련 측의 남한과의 수교 움직임에 대해 항의하고 동유럽권의 수교 움직임을 막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이 역시 무참히 거절당한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의 외교안보전문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와 북한대학원대가 공동으로 찾아낸 옛 소련 국립문서보관서 비밀해제 문건에서 밝혀졌다. 본보가 입수한 1986년 5월 16일자 대화록에 따르면 황 비서는 야코블레프 당서기에게 “사회주의 국가들이 일치단결해 올림픽 공동 개최를 성사시키는 노력을 지지해 달라”고 요구하며 “단독 개최로 인한 결과는 전적으로 남한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압박해 달라”고 주문했다.

1988년 10월 18일자 대화록에서 황 비서는 “지금껏 북한과 우호관계를 맺고 긴밀하게 협력했던 나라(1988년 대사급 외교사절 교환을 전격 발표한 헝가리)가 조선인의 모든 희망과 신뢰를 저버렸다”며 “사회주의 국가들에 남한과 정치적 관계를 수립하지 못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야코블레프는 “모든 나라는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지금 세계는 변하고 있으며 소련공산당은 이러한 변화가 사회주의 이념 및 사회주의 국가들의 이익과도 부합한다고 믿는다”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대화가 있은 지 불과 20여 일 후인 11월 10일 소련은 정치국 비공개 회의에서 남한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결정했다. 북한은 1990년 9월 한소 수교를 설명하러 평양을 방문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교장관에게 독자적으로 핵 개발 의사를 밝혔다.

자료 발굴 및 분석 작업에 참여한 신종대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결국 이 ‘사건’은 옛 소련과 북한의 결별을 가져왔고 체제생존의 위협을 느낀 북한이 핵개발로 나아가는 하나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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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추천 많은 댓글

  • 2009-10-31 04:34:55

    이번 기회에 친북인명사전도 만들자.

  • 2009-10-31 17:55:33

    눈을 밖으로 돌리지 못하고 자폐증에 빠진 북한 체제! 이 체제가 남이 아닌 한핏줄 형제지간에 일어나니 참으로 슬프다. 언제 이 외눈백이 자기 광신에 빠진 북한 사회가 서로 북돋우며 사는 인간 사회로 돌아올 것인가? 북한이눈을 뜨고 광명 천지 대로로 나오기 간절이 바란다.

  • 2009-10-31 06:44:38

    동아에서 삭제된 기사; 실제 북한은 공동 개최가 사실상 무산되자 넉 달 뒤 김포공항 테러에 이어 다음해엔 KAL기 폭파 테러를 감행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왜 동아가 이 중요한 대목을 빼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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