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진보정책 차용’ 성과 얻자 정세균 “보수정책 채택 가능”
외고 논란-아프간 파병 문제 여야 지지층 의식 당론 못정해
“중원(中原)을 잡아라.”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여야의 이념적 계층적 중도세력 쟁탈전이 본격화됐다.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이 ‘친(親)서민중도실용’을 기치로 진보 진영의 정책을 벤치마킹해 쏠쏠한 성과를 얻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서민과 중산층의 삶 개선을 위해서라면 보수 진영의 정책을 채택할 수 있다”며 중도층을 겨냥한 역(逆)벤치마킹을 선언했다.
올 초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대략 각각 30%대와 20%대를 오르내린다.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세종시 논란 등 대형 이슈가 터질 때에도 지지도는 어느 한 쪽으로 확 쏠리지 않았다. 결국 승부의 키는 지지 정당이 뚜렷하지 않은 중원을 누가 더 오래 차지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 이 대통령의 중도 강화
이 대통령은 6월 ‘중도실용’을 기치로 친서민 정책을 자신의 고유 브랜드로 삼아왔다. 7월 실시 방침을 발표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등록금 후불제)’는 원래 민주노동당의 대선 공약이었다. 9월 선보인 마이크로 크레디트(기존 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에게 담보 없이 저리로 대출해주는 제도) 사업인 미소금융은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2007년부터 추진하던 아이디어였다.
이로 인해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한동안 상승추세를 유지했다. 리서치앤리서치 정례 조사를 보면 7월 7일 36.4%, 8월 4일 40.5%, 9월 1일 46.1%, 10월 6일 54.3%로 올랐다. 특히 자신을 이념적으로 ‘중도’라고 응답한 그룹에서는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32.8%→39.3%→45.2%→47.6%로 껑충껑충 뛰었다. 중도층이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민주당은 당황했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고 강령에 못 박고 있는 민주당은 “가짜 서민정책” “정책 베끼기”라는 비난을 퍼부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청와대는 “실용이란 원래 좋은 것을 차용하는 것”이라고 치고 나왔다.
○ ‘정세균 독트린’ 선언
10·28 재·보선 승리 직후인 1일 정 대표는 “재·보선 승리는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정권의 일방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국민의 선택에 따른 결과였다”면서 이른바 ‘정세균 독트린’을 선보였다. 중도 노선을 강화해 ‘반대만 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정책 대결을 통해 대안정당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이 대통령의 ‘친서민 중도실용론’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중도를 껴안을 자체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토로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4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유연한 중도진보 세력이 될 것이다. 나라와 시대를 불문하고 수권 정당을 위해서라면 중도를 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독트린’은 아직 선언 단계다. 민주당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서민, 중산층 정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일단 유류비 상승에 따른 서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류세 탄력세율(유류가격과 유류세율을 연계) 도입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반값 대학 등록금’, 노인 틀니 무상 지원을 위한 법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 문제는 ‘집토끼’
여야는 모두 중원 쟁탈전 와중에 자칫 ‘집토끼’를 잃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여권은 외국어고의 특성화고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이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였던 ‘자율’ ‘경쟁’과 배치되는 것이다. 리서치앤리서치 조사 결과 10월 6일 54.3%까지 올랐던 이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외국어고 논란 등이 벌어진 후인 11월 3일에는 40.8%로 급락했다.
민주당은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둘러싸고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엔 여당으로서 이라크 파병에 찬성했지만 해외 파병은 민주당의 정체성과는 다소 궁합이 맞지 않는다. 여당 시절 찬성했던 것과 달리 반대하자니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고, 찬성하자니 지지층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포스커뮤니케이션’ 이경헌 대표는 “중도를 중시하다 보면 강경파, 비주류의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며 “효과적인 내부 정리가 중원 장악의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