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갈등의 심리학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정부가 내년 1월을 목표로 세종시 대안 마련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가운데 정치권의 찬반 논란도 갈수록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생각과 속내도 복잡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감자를 건드린 데는 어떤 심리적 기제가 깔려 있는지, 또 여야의 대립 전선 이면엔 어떤 사정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MB 신념? 과신?
前정권과 차별화 통해 성공신화 재현하려는 의지
원안은 ‘실용’ 마인드론 도저히 수긍하기 힘든 듯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비공식 석상에서 몇 차례 “그냥 놔두면 나도 편하지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종시는 유령도시가 되든 말든 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사안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적 논란이 불 보듯 뻔한 사안을 굳이 건드린 데는 ‘국가 100년 대계’ ‘책임감’ ‘양심’ 등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최고 권력자의 심리적 요인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5년 임기 중 만 2년째를 맞고 있다. 국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 역사에 남을 지도자가 되겠다는 소명의식과 권력의지 등이 복잡하게 작용할 시기다. 상황과 케이스는 다르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세계화 구상, 새천년민주당 창당, 대연정 구상 등의 정치실험을 통해 국정 주도권을 잡으려 했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전임 대통령과 차별화하면서 세종시를 자신의 브랜드로 만들어 성공신화를 재현하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논리와 실용적 측면에서 세종시 원안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정책으로 여긴다는 분석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분권주의자인 데 반해 대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의 이 대통령은 효율성을 중시하는 ‘진두지휘형’으로서 정부 부처를 여기저기 쪼개놓는 것을 심리적으로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한 사석에서 “정부 부처를 이전할 거면 빌딩 몇 개 지으면 되지 뭐 하러 도시를 만드느냐”는 취지의 부정적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더불어 차기 권력구도를 통제하고픈 심리가 깔려 있을 것이란 관측도 무성하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 자유선진당 반발 등으로 보수 진영이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많다. 친이계 내에서조차 회의론이 일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상승 등을 바탕으로 차기 대선후보 구도를 박근혜 전 대표의 독점 체제에서 경쟁 체제로 바꾸겠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고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분석했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를 그대로 둘 경우 차기 대선 때 보수 진영의 발목을 잡을 악재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이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 구상이 장차 국정운영에 약(藥)이 될지 독(毒)이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정부가 갖가지 정책 수립 및 홍보 수단이 있는 만큼 궁극적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정치권의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낙관론과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세종시 수정 반대파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하고 국정의 추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함께 나오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친 이 긴장 최대계파 힘 발휘 못해… 내부결속 분주
친 박 고무 여론 변화에 반색… “당 주도권 쥘 기회”
정몽준 위기 “당 분열됐는데 리더십 부재” 비판 부담
야 당 무력 민주-선진 “박근혜 입만 바라볼 수밖에”


○정몽준 대표 시험대 올린 ‘친이 vs 친박’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 수정 방침을 분명히 한 뒤 한나라당 내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간의 대립각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잇따른 ‘원안+α’ 발언으로 친박 진영이 결집하자 친이 진영도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세종시 원안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명분을 앞세워 맞서고 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친이계는 우선 전열 정비에 착수했다. 최근 회원수가 60여 명으로 늘어난 친이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가 3일 모임을 가진 데 이어 친이 직계 모임인 ‘안국포럼’ 회원들도 6일 만났다. 이들은 정부가 세종시 대안을 내놓을 내년 1월이 세종시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친이계 일부에선 정부가 치밀한 사전 조율 없이 세종시 문제를 이슈화한 데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아 친이계 내부의 교통정리가 먼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친박계는 박 전 대표의 발언 이후 여론이 유리한 쪽으로 조성되는 데 고무된 표정이다. 친박계는 “수정을 전제로 한 특위에 참석할 수 없다”며 친이계 중심의 세종시 원안 수정 움직임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내에선 내년 지방선거와 정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계가 당의 주도권을 쥘 계기가 마련됐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수정안이 나온 이후 여론의 향배가 바뀌면서 박 전 대표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8일로 취임 두 달째를 맞은 정몽준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세종시 논란이 정운찬 국무총리와 박 전 대표 간 양자대결로 전개되면서 정 대표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당이 분열하고 있는데 정 대표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그에게 부담이다.

○박근혜 입만 바라보는 ‘민주+선진’

“구도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문제 해결의 열쇠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

민주당의 한 충청권 재선의원은 8일 이같이 푸념했다.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논란의 한복판에 들어오면서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야권의 무력감을 토로한 것이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정국이 원안 수정을 추진하는 이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대 ‘원안+α’를 주장하는 박 전 대표의 대립 구도로 전개되자 야권은 고민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에서도 박 전 대표의 개인 지지율이 오른 반면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의 지지율은 한나라당과 함께 각각 0.3∼0.6%포인트 동반 하락했다.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은 세종시 원안을 지키기 위해선 박 전 대표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충청 출신인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박 전 대표의 세종시 발언을) 평가하고 있고 환영한다”(지난달 27일) “박 전 대표가 (원안에) 찬성 태도를 갖는 것은 옳은 일”(6일)이라고 강조했다.

충청권의 맹주를 자처하는 선진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당직자는 “만약 박 전 대표가 OK 할 정도의 세종시 개정안이 나온다면 우리 당에서도 OK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상민 선진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정치적 가치와 방향성, 목표를 같이한다면 어느 정치세력, 어느 정치인과도 연합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회창 총재는 7일 “이 대통령이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수정 추진하려는 것은 4대강 사업에 돈을 퍼붓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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