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통령 선거때 급조
잇단 패배에 차떼기당 오명도
2007년 10년만에 재집권 성공
“1997년 대통령 선거를 한달 앞두고 한나라당이 출범했을 때 웬만한 당직자들도 대선이 끝나면 사라질 당으로 생각했다.”
한나라당 창당 12주년을 하루 앞둔 20일 한나라당 관계자는 창당 당시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1997년 신한국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는 야권에서 ‘DJP(김대중+김종필) 후보단일화’가 성사되자 민주당 조순 총재와 전격 합당해 한나라당을 만들었다. 이때만 해도 한나라당의 등장은 선거 때마다 생기는 급조 정당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 정당은 ‘차떼기당’의 오욕을 뒤집어쓰면서도 10년 만에 집권에 성공했다. 한나라당은 제3, 4공화국의 집권당이었던 민주공화당(17년 6개월)에 이어 한국 정당사에서 두 번째로 장수한 정당이 됐다.
○ ‘생소한’ 당명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은 한학에 밝은 조순 초대 총재가 지었다. 크다는 뜻과 ‘하나’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한글 이름 자체가 기존 당명과 달라 정치권에선 생소하게 비쳤다. 일부 당직자가 이 당명에 반대했으나 조 총재가 버텨 한나라당이란 이름이 태어났다고 한다. 이름이 생소한 탓에 ‘당나라당’ ‘딴나라당’이란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간판’을 내리자는 시도도 몇 차례 있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인 2004년에 ‘차떼기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당명 개정 움직임이 본격화된 적이 있었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과거와 단절하고 당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조치로 당명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새로운 당명을 공모까지 했다. 하지만 당명 개정에 대해 “굳이 당명을 바꿔서 뭐 하느냐”는 반발이 거셌다. 결국 박 전 대표도 당명 개정 카드를 접어야 했다.
○ 등 돌린 창당 주역들
창당 주역인 조순, 이회창 전 총재는 차례로 당을 떠난 뒤 자신이 만든 당과 맞붙었다. 당명을 지은 조순 초대 총재는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당권을 놓고 이회창 전 총재와 갈등을 빚다가 조기 퇴진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주류 측이 공천 물갈이에 나서자 탈당한 뒤 공천 탈락자들을 규합해 민주국민당을 만들어 한나라당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두 차례나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나섰던 이회창 전 총재는 2002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도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에 복귀해 충청권을 기반으로 자유선진당을 만들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었지만 참패했다.
○ 10년 야당 위기의 연속
한나라당의 12년 역사는 영광보다는 오욕과 좌절로 이어진 세월이었다. 대선을 위해 당을 만들었지만 창당 한 달여 만에 치른 대선에서 패배했다. 김대중 정부 말기 원내 제1당으로 ‘사실상의 여당’ 행세를 하며 승리를 자신했던 2002년 대선에서도 잇달아 패배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에서 압승하면서 10년 야당의 오랜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때 한나라당은 가장 큰 위기에 몰렸다.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존폐의 기로에 섰다. 대선자금 수사에 곤욕을 치르던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는 2004년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했다가 탄핵 역풍을 맞았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신임 대표를 내세워 위기를 돌파했다. 차떼기당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여의도 당사를 떠나 여의도공원 건너편 ‘천막 당사’로 옮겨야 했다.
2005년엔 정당 당사 중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불렸던 10층짜리 여의도 당사를 팔았다. 대지만 39만7000m²(약 12만 평)에 이르렀던 충남 천안 연수원도 국가에 헌납했다. 사무처 당직자 퇴직금과 빚을 갚고 불법대선자금을 변제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덕분에 한나라당은 가까스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다음 해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몇 차례 탈당과 분당 위기 등을 겪었으나 매번 막판에 갈등을 봉합했다. 하지만 최근 세종시 문제로 당내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계 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당 일각에선 “이러면 당을 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다시 흘러나온다. 한나라당이 역대 최장수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어제 창당 12주년 기념식▼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 등 당 지도부가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창당 12주년 기념식에서 ‘생일 떡’을 자르고 있다. 김경제 기자 한나라당은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창당 12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조촐한 다과회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엔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자와 박희태 전 대표, 박형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주호영 특임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
정 대표는 기념사에서 “(지금 한나라당 앞에는) 세종시, 4대강, 지방선거 준비 등 발등에 떨어진 불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라며 “창당 정신으로 열심히 일해야 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정당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원내대표도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앞으로도 당에서 최고 통치자를 만들어내 10년, 20년 집권하면서 우리나라를 굳건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형준 정무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은 ‘당에 대해 동지적 애정을 갖고 있고, 당에 대한 각별한 사랑의 마음을 전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희태 전 대표는 “‘당화합 만사성’이다. 화합해야 난제를 풀어갈 수 있다”면서 ‘한나라당은 하나다’라는 건배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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