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와대 안팎에선 대형 이슈가 너무 많다는 얘기가 나온다. ‘4대강 살리기’만 해도 정권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데 세종시, 노동법, 외국어고 문제 등 난제가 거의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대통령 지지도가 소폭 하향 추세를 보이는 것이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이슈가 많을수록 지지층이 분산된다는 얘기다.
○ 동시에 접시에 올라온 대형 이슈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슈들은 청와대나 여당의 계획보다 너무 일찍 대형화됐거나 예상치 않게 튀어나온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세종시 논란은 정운찬 국무총리가 총리로 내정된 당일인 9월 3일 기자간담회에서 “원안대로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됐다. 당시 청와대에선 “불을 끄라고 했더니 오히려 불을 질렀다”는 말이 많았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 세종시 이슈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점을 일부 인정했다.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방침도 여권으로부터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다소 앞서나갔다는 원성을 샀다. 완급 조절이 안 돼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하고 있는 한국노총을 지나치게 자극했다는 것이다.
외고 입시 문제는 느닷없이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제기하고 나서 당정청 간에 이견이 불거졌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었다.
25일엔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취학 연령을 낮추겠다고 발표해 역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취학 연령 조정은 학제 변경을 수반하는 문제로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위의 특성상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그런 방식이 정부 내 혼선이나 설익은 정책 제안으로 비쳐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 자신감인가, 관리 부재인가
과거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정책통과 정치학자들은 이슈 난립이 여야 간 또는 보수 대 진보 간 전선을 확대해 정권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윤여준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은 “청와대 정무라인이 대통령의 센서 기능을 해야 하는데 그게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슈별 시기를 조절하고 정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그는 “세종시처럼 정부가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정책이라면 대통령이 처음부터 주도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중앙대 장훈 교수(정치학)는 정부의 지지도 회복이 이슈 난립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지지도가 오르면서 자신감이 회복되고, 그래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이슈를 내놓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지도라는 정치적 자원이 무제한적으로 공급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정치학)는 컨트롤타워 기능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오른팔이던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을 통해 개별 이슈를 정무적으로 판단해 종합 관리했다”며 “지금 청와대에 대통령이 전권을 부여할 수 있는 오른팔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대통령수석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은 좋지만 대통령에게 개별적으로 정책을 건의하고, 추진하려는 모습도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단도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대통령이 되면 원래 고집이 세진다. 노 전 대통령도 냅다 지르는 스타일이어서 힘들었다”며 “길게 갈 것은 길게 봐야 한다. 정권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이 있는 반면 10년짜리 사업도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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