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정부, 여당 내에 미묘하게 엇갈리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청와대가 세종시 원안 수정 방침을 설득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서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에선 “설득이 안 되면 원안 수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정부가 내놓을 세종시 대안이 행정기관 이전 백지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당정청 간에 온도차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정 총리는 2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세종시 이전 정부 부처의 범위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민관합동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며 “하나도 안 갈 수도 있고 다 갈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이전 문제에 대한 민관합동위원들의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토로한 것이지만 “(원안의 9부 2처 2청이) 다 갈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대목은 최선을 대해 대안을 마련했는데도 반대가 심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 “성의를 다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해야 한다”며 “그래도 안 되면 길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과도 일정 부분 맥이 통한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발언은 설득과 이해에 방점이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에서는 “설득이 안 되면 도리가 없는 것 아니냐”는 쪽에 방점을 둔 발언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최고위원 조찬간담회에 참석했던 조윤선 대변인은 2일 한 방송에 출연해 “(정부의 세종시 대안을) 충청도민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저희가 대안을 밀고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조 대변인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선 “세종시는 국민의 반대에 맞서 무리하게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반대 여론이 심했던 대운하사업을 포기한 바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공성진 최고위원도 전날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대안이 국민과 충청도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고 하면 우리로서는 보완 아니면 폐기를 건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사석에서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딱 접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당정청 간의 이 같은 온도차는 그간 세종시 논란이 진행되어 온 경위와 무관치 않다. 세종시 원안 수정은 당정청이 의견을 조율한 상태에서 제기된 게 아니라 정 총리가 총리내정자 시절 느닷없이 문제 제기를 하면서 불거졌고 그 후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한나라당은 마지못해 따라오는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실제 당내 일각에선 “친박(친박근혜)계가 끝까지 반대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현실적으로 ‘출구전략’의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퇴로 모색을 일축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대선 때의 세종시 언급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죄송스럽다”며 수정 추진의 불가피성을 설명했고, 이에 공감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마당에 퇴로 모색은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그래도 안 되면 길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 것은 ‘원안+알파’ 식의 절충안은 있을 수 없으며 원안 아니면 수정안을 놓고 양자택일의 국민 선택을 받겠다는 강한 의지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정 총리는 이날 관훈클럽 토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한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도 안(案)을 언제까지 낼지, 그리고 그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도 드릴 말씀은 드리고 있다”며 “저는 전혀 예스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종시 수정안 공개 시기에 대해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이달 말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수정안의 대체적인 윤곽은 이미 나와 있다. 결국은 여론전이고 정치권의 합의 여부다. ‘대통령과의 대화 그 후’도 세종시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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