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역할 약해질 것” 통제강화 의도 확인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5일 03시 00분


北, 화폐개혁 나흘만에 조선신보 통해 공식 발표

북한이 4일 재일조선인총연합(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지난달 30일 단행한 화폐개혁 조치의 상세한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조치의 핵심적인 목표는 2002년 7월 1일 단행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북한은 임금과 물가를 동시에 인상해 노동 인센티브를 높이고 공식 경제부문에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상품 공급 부진에 따른 추가 물가 상승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2003년 이후 ‘종합시장’을 허용해 왔다.

○ 새롭게 밝혀진 화폐개혁의 내용

조선신보는 이번 조치가 ‘새 돈을 발행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최고인민회의 정령(政令)과 내각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이 이번 보도를 통해 화폐개혁을 공식 확인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6일까지 헌 돈과 새 돈을 100 대 1의 비율로 바꿔주기로 했다. 특히 은행에 저금한 돈은 10 대 1의 비율로 바꿔주기로 했다. ‘장롱 속 현금’을 끌어내기 위해 저금에 한해 인센티브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핵심적인 내용인 가구당, 개인당 새 돈의 교환 한도는 밝히지 않았다.

○ 물가 잡고 계획경제 정상화 노려

이번 조치의 우선적인 목적은 물가안정이다. 조선신보는 조성현 북한 조선중앙은행 책임부원을 인용해 “시장의 물가가 7·1조치 이전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오고, 공식 유통망이 정상화되고, 시장이 사라져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될 것이라는 논리다.

조선신보는 특히 종합시장에 대해 “지난 시기 국가가 기업소들의 생산 활동에 필요한 물자를 계획한 만큼 원만히 보장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시장의 이용을 일부 허가했다”며 “그러나 국가 능력이 강화됨에 따라 보조적 공간의 기능을 수행했던 시장의 역할이 점차적으로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시장 통제를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 가격-외환정책 7·1조치 수준 유지

북한은 앞으로 상품 가격과 근로자 생활비 수준을 7·1조치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7·1조치로 쌀 1kg의 국정가격은 45원, 사무직 근로자 월급은 3000원 수준으로 맞추려 했다. 하지만 이후 시장물가가 오히려 크게 올라 월급만으로 생활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 화폐개혁에 따라 헌 돈의 상당 부분이 소각돼 화폐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7·1조치 당시 수준으로 임금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질 임금이 높아지고 국영상점에 싼 값으로 상품이 공급되면 시장에서 돈을 벌던 주민들이 공식 계획경제의 영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인 셈이다. 북한은 또 상점과 식당 등에서 외화 유통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7·1조치 직후인 2002년 11월에도 달러 사용을 금지했으나 유야무야됐다.

○ 상품 공급 안 되면 성공 어려워

북한은 올해 150일 전투에 이어 100일 전투 등으로 전반적의 경제가 상승궤도에 들어섰기 때문에 이번 조치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현재의 북한경제 상황을 볼 때 당국이 자체적으로 공급을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조치는 결국 개인들의 상행위를 잠시 위축시킬 수는 있지만 근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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